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작가인가? 아니면 기록자인가?' 쓰는 행위를 보면 작가인 것 같지만 쓰는 것의 결과를 보면 기록자가 오히려 맞는 듯하다. 그래서 난 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게 맞을까? 오늘은 평소 잘하지 않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마 또다시 글 쓰는 한 달의 여정이 시작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작가보다는 기록자로 여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 작가는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글은 이야기를 짓기보다는 나를 그려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고 하루의 사건을 기록하고, 아이의 말과 행복의 요소를 기록하고, 책을 읽다 맘을 두드린 문장을 수집한다. 결국 내가 하는 일련의 행위는 기록에 더 가깝다.
기록자의 글쓰기는 오히려 조금 더 방대하고 두서가 없는 듯 보인다. 깊은 사색보다는 순간을 붙잡는 경우가 많다. 순간은 언제나 실마리가 되어준다. 머리를 식힐 겸 틀어놓은 TV 방송이 기록할 거리를 던져주고, 지하철 한쪽 구석에 서서 바라보는 창 밖의 풍경이 이야기의 시작이 된다. 그런가 하면 수집해 놓은 문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망원경이 되어 지나온 하루를 기록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록은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에 기록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나 자신이 모호하다 여겨진다면 그만큼 자신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는 기록을 활자로 남겨놓는 무엇 정도로 좁게 설정해 놓은 탓일 수도 있다. 기록은 꼭 활자나 음성, 영상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책장, 옷장, 잡동사니가 담겨있는 수납함 등 모든 것들이 기록이 된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이 시대의 소비는 곧 아이덴티티다.
즉, 소비한 것들과 소비된 것들이 모두 나에 대한 기록이 된다. 그 속에 나의 취향이 반영되고, 삶의 이유가 담기며,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이 드러난다.
나를 탐구하고자 마음을 먹고 기록을 시작하니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무엇보다 소비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면 필요치 않은 소비에도 나 자신이 담겨있음을 깨닫게 된다. 굳이 없어도 될 물건들에는 나의 바람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책 속의 문장처럼, 그것을 소비하고 소유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바람 말이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다. 글을 쓰며 내면을 계속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내가 사용하는 시간과 돈은 의미 없이 지불되는 수단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에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순간은 없다고 믿는다. 모래알도 합쳐지면 거대한 모래사장이 되듯 의미 없이 반복되는 듯한 하루와 행위들도 합쳐지면 큰 의미가 된다.
결국 나의 글쓰기는 기록을 위함이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나의 글쓰기는 나를 기록하는 리추얼과 같다. 누군가의 명상과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이 시간은 가장 깊게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