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은이여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은이여
우리 모두 같이 흥겨웁게 노래해요
푸른 나래 펴고 꿈을 먹는 젊은이여
성난 파도처럼 이 자리를 즐겨요
행복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 것
괴로움은 모두 저 강물에 버려요
사랑과 욕망도 모두 마셔 버리고
내일을 위해서 젊음을 불태워요
남궁옥분 님의 '꿈을 먹는 젊은이'
'청춘'이라는 단어는 그 안에 에너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푸르름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여름날의 뜨거움처럼 그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청춘이라 하면 보통 20대가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가장 자유롭고 열정적이고 뜨겁게 열망하는 시기라는 생각에 그런 것 같다. 위의 노랫말처럼 그냥 꿈도 아닌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음. 성난 파도 같은 힘을 발산하는 그 시절. 그 시절이 바로 '청춘'이다.
청춘 앞에는 '꽃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그만큼 존재만으로 빛나고 아름답고 화사하다. 향기롭고 자기만의 색깔이 도드라지는 인생이 주는 선물 같은 시기다. 그래서 청춘을 만끽해야 한다. 삶의 고민과 허황된 것을 쫓으며 낭비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나조차 청춘을 만끽하진 못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누렸지만 그러나 '만끽'이라고 표현할 만큼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청춘이란 단어의 이면에는 지나친 순간에 대한 회한이 나직이 깔려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청춘에 가장 잘 들어맞는 시기가 20대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기는 물리적인 나이로만 구분 지어지는 건 아니다. '푸른 나래 펴고 꿈을 먹는'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면 삶이 다할 때까지 우린 청춘이지 않을까.
현시대야 40대도 청년이라고 하지만, 아무렴 진짜 청년들만 할까. 사회생활에 찌들고, 육아에 치이면서 길어진 생애주기에 대비하기 위해 아직도 갓생을 살아야 하는 시기가 요즘 40대다. '꿈을 먹는 것'과는 다소 생소한 삶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난 계속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 나의 SNS 슬로건은 '아빠가 성장이 곧 자녀의 성장입니다'이다. 어제 읽은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엄마,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엄마는... 다 큰 것 같은데?"
"에이... 엄마, 더 커야지."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진지하게 엄마가 더 커서 뭔가가 되길 바라는 뉘앙스였다.
이유미 저 <오늘로 쓴 카피 오늘도 쓴 카피> 중에서
나에게도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 문장이었다. '만약 내 아이가 지금 보다 자라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가슴에 묻어둔 꿈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꿈인지 그냥 생각인지, 바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들이 저만치에 보이길래 일단 꺼내 두었다. 사소한 것에 진심이 담기는 경우가 많은 법이니, 무엇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들에 사실 내 본심이 새겨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여겼다. 무엇이라도 꺼낼 수 있는 게 있으니. 20대 청춘들만큼 타오르는 꿈은 아닐지 몰라도 아직 내게 '먹을 수 있는 꿈'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꿈이 있다면 우린 오늘이 바로 청춘이다. 꿈이 사라진다면 20대라도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꿈은 소중하다. 꿈을 꾼다는 것은 삶을 희망한다는 것이고 살아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러니 계속 꿈을 꿔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나'만큼은 그 꿈을 지지해 주자. 삶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혹 내일 그 꿈이 이뤄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