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살아보니 그렇더라
제목을 써놓고 혼자 피식거리게 된다. 고작 40 초반에 인생을 뭘 안다고 저런 제목을 달아놓는가, 스스로도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마흔인데 몇 자 풀어낼 만큼은 살지 않았나 싶어서 꿋꿋이 글을 써 내려가 보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인생의 선배들이 하는 말씀들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결국 인생의 교훈은 한 가지인 것 같다. '삶이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쨌든 흘러간다'라고. 정신 차려보니 나도 40대가 되었다. 근데 이 표현은 50대에도, 60대에도, 그 이상의 어른들도 똑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정신 차려보니'라는 말로 나의 오늘을 수식하는 것은 그만큼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걷고 뛰다가 잠시 쉬고, 다시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어? 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됐네?'라는 마음이 드는 것. 그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걷고, 뛰고, 쉬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은 각각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중간에 탈이 나는 건 그때를 잘 못 짚었기 때문이다. 걸어야 할 때 뛰면 얼마 못 가 퍼진다. 뛰어야 할 때 걸으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쉬어야 할 때 걷거나 뛰면 병이 나거나 더 이상 행동 불능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을 수시로 살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 달리기를 완주하려면 결국 내가 나의 코칭 스테프 역할을 해야 한다. '나'라는 선수가 삶을 완주할 수 있도록 완급 조절을 해주는 역할. 최근 SNS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20대 CEO의 이야기를 봤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올라온 질문에 남긴 답이었는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
질문: 어떤 분야든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위축되어 시작하는 것이 어려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을 멈추세요. 그리고 나에게만 집중하세요. 저는 항상 누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만큼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어요. 누군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가 참 재미있게 후회 없이 도전했구나'라는 마음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보냈어요.
어쩌면 이 젊은 대표는 이미 완급조절이라는 것을 체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달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스스로는 난 지금 죽어라 달려야 할 시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5년을 죽어라 달렸고 창업 5년 만에 50억을 달성한 광고 에이젼시의 대표가 될 수 있었다.
인생에 '후회'라는 글자로 남는 일들을 떠올려 보면 결국 시기의 미스매칭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40대가 되어 가장 후회로 남는 순간은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의 시간들이다. 후회한들 무엇하랴만 곱씹어 볼 수 있는 아쉬움이 있기에 지금을 기민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종종 꺼내어 쓴맛을 느끼며 씹어보게 된다.
더 살아보면 또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큰 흐름에서 보면 어른들이 했던 말씀들을 그대로 밟아가는 것 같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를지라도.
삶을 잘 살아가고 싶다면 선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이 든 이들의 지혜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뼈가 곪도록 경험해 봤기에 삶으로 내뱉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좀 더 예리하게 방향을 설정하고 싶다면 선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나의 정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기준은 되어 줄 테니.
요즘 인생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회사밖의 삶은 특히 상대 속도에 예민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노력이라는 말 이상의 에너지를 요하는 것 같다. 사실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상대 속도에서 한 발짝 멀어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나의 현재 속도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의 현재 상태이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자. 나는 지금 걸어야 할 때인지, 달려야 할 때인지, 아니면 쉬어야 할 때인지 말이다. 무작정 재촉하기보단 조금 더 나에게 진심을 다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긴 호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