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멍 때림의 효과가 있다.
요즘 멍 때림도 다양한 버전이 나오는 것 같다. 불멍, 비멍, 식물멍, 세탁기멍, 등. 순간 궁금해진다. 글쓰기도 멍이 가능할까? 오늘은 어디 글멍 한번 해봐야겠다. 근데, 글멍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멍 때림은 늘 시간 낭비나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의미가 재해석되어 오히려 바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숨 쉴 수 있는 틈을 주는 매우 필요한 순간이 된 듯하다. '나는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니 '아니'라는 답변이 나온다. 진짜 제대로 쉰다는 것은 어떤 상태로 쉬는 것일까?
일전에 본 영상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단순히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제대로 쉬는 게 아니다. 제대로 쉬는 것은 행동을 멈추는 것을 넘어 뇌가 쉬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어렵다. 뇌가 쉬어주는 것이라니. 가장 좋은 예가 수면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짧게 낮잠을 자는 것이 과학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영상의 내용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쉰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강도 높은 활동을 하고 돌아와 피로가 누적된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연 쉰 것이 맞나 싶은 상태. 집에 돌아와 내뱉는 첫마디가 '아우, 이제 좀 쉬자'라는 웃지 못할 상황 말이다. 반대로 어떤 날 숙면을 취하고 났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상태는 그날 하루의 활력이 된다. 어쩌면 잠깐의 휴식을 취하더라도 마땅히 느껴야 할 상태는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다시 제대로 쉬는 것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을 했을 때 개운한 상태로 회복되는가?
따지고 보면 하루에도 쉴 수 있는 틈은 의외로 많다. 그러나 제대로 쉴 줄 몰라 쉬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나다. 난 가만히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만히 있기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고, 반대로 가만히 있음 안될 것 같은 현실의 불안 때문일 때도 있다. 그야말로 '멍 때리기'와는 상극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멍 때리기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은 그만큼 삶의 피로누적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날 괴롭히는 건 역시 나 자신이다.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부정적인 상상. 성장하고 싶고 어제보다 나아진 내일을 위해 애쓰는 나에게 강하게 저항하는 심리적 반작용은 언제나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심리적 측면에서 기초대사량을 측정해 보면 아마 나는 기초대사량이 매우 높은 사람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 소모가 크니.
한참 식물을 기를 땐 시멍 시간이 그 나름 하루의 힐링이었다. 짧은 시간이어도 해가 드리우는 순간 녹색이 투명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때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지금은 식물을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해서 식 멍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보니 다른 멍 때림의 시간이 필요한데 마침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글멍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글쓰기는 그야말로 뇌를 쥐어 짜내듯 사용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게 멍 때림이 될 수 있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단서를 찾은 것은 키보드 덕분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기계식 키보드의 소리. 자판을 누를 때 '타 다다닥' 거리는 기계식 키보드 많이 소리는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글발이 잘 받아 멈춤 없이 글을 써 내려갈 때면 그 효과는 매우 크다.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글멍이 아닌 키보드멍이라고 해야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글 쓰는 시간에도 뇌즙 짜기와 멍 때리기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은 정말 멍 때리기가 필요한 하루다. 소파에 잠깐이라도 누워 눈을 감아봐야겠다. 아니면 명상을 하듯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눈알만 돌려도 집안일이 보이는데, 오늘 멍 때리기는 가능하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