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김없이 가을이라고 답한다. 그다음은 봄. 여름과 겨울은 엇비슷하다. 계절에 대한 선호도를 생각해 보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확실한 한쪽을 택하기보다 이쪽저쪽의 면모를 두루 걸친 계절을 좋아하는 걸 보니.
한여름이 지나고 있다. 한참 쏟아진 폭우로 도로가 통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던 시절에는 매일의 삶에 맞닿아있던 터라 바로 실감했는데, 지금은 이런 소식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그마저도 누군가 꺼내지 않음 모를 일이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여름엔 그 어느 때보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솔직히 살면서 숙면이란 걸 경험해 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대체로 숙면을 못 취하는 편이긴 한데, 그런 중에 여름엔 특히 심하다. 게다가 삶에 대한 불안이 더해지니 일찍 잠드는 게 점점 어려워졌고 늦게 잠드는 습관까지 더해져 수면의 질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수면 상태 불량은 컨디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시간을 맥락 없이 흘러가게 만들었다.
직장인일 때야 여름이 좋은 건 그나마 여름휴가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의미가 없으니. 오히려 장시간의 에어컨 사용으로 전기세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시간은 계속 맥락 없이 흘러가고 나의 하루는 매가리 없이 흘러가고.
주말 동안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은 생각이 정리가 된 듯싶었는데, 어째 월요일이 되니 다시 도루묵이 된 기분일까.
요즘 머릿속과 마음은 정리가 되지 않은 내 방 같은 기분이다. 당장이라도 손을 대고 싶지만 마음이 자꾸 '의지 없음'을 내비친다. 해야 할 일,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제를 잔뜩 쌓아두고도 '의지 없음'을 내비치는 건 대범 함일까 아님 '포기'와 같은 심리적 작동인 걸까? 포기는 아닌데, 자꾸 생각이 나태해지는 기분이다. 여름 때문이다. 이게 다 푹푹하고 습습한 여름 때문이다.
매일 아침저녁 찬물로 샤워를 하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땐,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맥락 없는 시간의 줄기를 다시 연결할 수 있으려나.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
잠시라도 더위를 잊어버릴 수 있음 한결 나아지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