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결국 방법을 찾을 거니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었더랬다.
나의 무가치함과 수치심을 함께 버무린 비빔밥을 먹는 느낌이었었더랬다.
이제는 그랬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지금 내가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있어서
힘들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보자.
나에게는 용기와 힘이 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자.
나는 할 수 있다.
- 스타티스 작가님의 글 중에서
누군가의 글을 읽었을 때 공명하는 듯 울리는 감정을 갖게 될 때가 있다. 최근 읽었던 글 속에서 그 울림을 느꼈다. 단어와 문장이 모두 지금의 내가 나에게 해주고픈 말들이었다. 서로 다른 삶이고 상황 속에 느꼈을 감정이겠지만 감정의 결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낄 때 다시 한번 글쓰기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하나 더해서 함께 쓰기의 매력까지도.
퇴사 후 삶의 1막을 정리하며 그 끝이 그간 이뤄내지 못한 한 개인의, 그리고 가장의 불안이었음에 뒤늦은 아쉬움이 불쑥 솟아올랐다. 인정하지만 그래도, 끝이 조금은 희망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어쩌겠나. 현실은 현실이니. 현재의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있는 그대로 나를 내어놓는 게 글쓰기를 대하는 나의 마음인데. 그나저나 하루 이틀 지나 아쉬움이 생겨나는 걸 보니 확실히 다시 회복되긴 했나 보다.
동료 작가님의 글을 보며 '인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마음이 내비치는 그 불안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흘러가게 억지로 막아서지 않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최근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감정은 흘러야 한다. 그중에서도 불안은 흘려보내야만 한다. 경험해 보니 불안은 머물러 있으려 하는 속성이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속성은 깊이 파고 내려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잠깐 동안 불안감이 머물다 갔지만, 그 시간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홀로 기록하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손을 대기조차 어려운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비할 건 아니지만 얕은 불안일지라도 그렇게 머물다 흘러갈 수 있게 조금은 유예의 시간을 주는 것이 한편으론 좋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신기한 건, 지나간 그 자리는 오히려 단단해진 기분이다.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용기와 힘의 싹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다시 2막의 시작이다. 방법을 찾아가기 위해 다시 힘을 내어보는 시간.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성장할 시간.
그러니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보자.
"나는 할 수 있다"
"결국 방법은 찾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