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충분히 나댔으니까 이제 머리로 가자
긴 장마 소식에 벌써 짜증이 밀려온다. 개인적으로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렇게 퍼붓는 날은 오죽 싫을까. 근데 이제 시작이라니. 이럴 때 가장 간절한 건 하루 종일 에어컨을 돌려도 될 낮은 전기세와 실내로 연결되는 지하주차장이다. 안타깝지만 이 두 가지 모두 나의 현실 세계에선 불가능한 듯 하니 현실을 그저 수용하며 살 수밖에. 그나마라도 에어컨은 카페라도 가서 죽치고 앉아있는다 치면 뭐 하루정도는 그렇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지하주차장은 이사를 가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문제니 수용하는 게 답이라고 말하는 거다.
하필 날씨만으로도 이래저래 감정기복이 널뛰는 사람인데 현실의 문제마저 답답함이 고조되니 요 며칠 정말 우울감이 최고 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럴 때 정말 많은 분들이 좋은 말로 위로해 주시고 마음을 써주신 덕분에 우울감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래, 뭐 경제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 건 아직 내 질문이 뾰족하지 못했다는 것일 테니 속은 상하지만 그냥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하자. 실패한 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 주자. 누구나 자신의 속도와 때가 있는 법이니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만, 더 중요한 건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이라지 않던가. 계속 하나 보면 언젠가 답을 찾겠지.
이제부터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머리로 가는 게 답인 듯하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원치 않는 것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퇴사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돌아보면 원하는 것에만 너무 몰두했던 것 같다. 그마저도 명확하지 않아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었으니. 적어도 '나'라는 사람의 진정성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된다.
다만, 살아가는 시간은 현실이기에 조금은 기민하지 못했고, 자주 타협했던 나를 인정하고 이젠 더 강제성을 부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난 약 1년 8개월의 시간을 정리해 보니 나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면서 '나'의 감성을 표출해 내는 삶. 그러면서 그것으로 나의 가치를 올리고 경제활동으로까지 연결되는 삶 말이다. 오늘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쩌면 이 글이 퇴사 후 삶에서 1막의 끝이 될 듯하다. 그렇다고 외형적으로 엄청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내면의 변곡점이 되는 시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굳이 1막의 끝으로 정해 본다. 이제 스스로에게 2막은 더 치열하게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을 건다. 며칠 전 글에 썼듯, 마감 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뭐라도 시작해서 정말 벼랑 끝에 서는 일은 막는 게 이제부터의 목표가 돼버렸다.
한때는 퇴사라는 것에 대해 나름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려고 노력했던 작가로서 혹여나의 글에 좋은 영향력을 받았던 사람이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뭐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 한 명의 독자라도 계시다면 말이다. 누구라도 퇴사는 신중하길 바란다. 적어도 경제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그럼에도 다시 말하지만 난 실패한 건 아니다. 그냥 길어질 뿐이고, 결국 이루어질 삶을 향한 과정이 지난할 뿐인 거다.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잔뜩 움츠러들었고 깊은 수렁에서 빛이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그건 내가 자꾸 바닥을 쳐다봐서 그랬던 것일 뿐. 하늘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뒤에는 여전히 푸른 하늘이 있는 것처럼 지금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답이 없어진 건 아니기에. 그래서 난 나에게 다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거다.
'실패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