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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하루

자, 지금부터 막 쓰기 신공을 보여주지!

by 알레

매일 글 쓰는 삶이 제법 익숙해졌다 싶은 때에 오늘 하루처럼 이렇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하루는 손에 꼽을만하다. 적잖이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훗 내가 누군가. 주중 매일 글쓰기를 8개월째 이어가는 사람이지 않던가! 좋다. 오히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으니 아무 말이나 떠들어봐야겠다. 자, 지금부터 막 쓰기 신공을 보여주지.


요즘 매일 글쓰기처럼 인스타그램에 릴스도 매일 올리는듯하다. 계획했던 건 아닌데 캡컷 영상 편집에 재미를 들리다 보니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게 된다. 요리하는 모습,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스튜디오 영상, 그리고 오늘은 책에서 돈이 나오고, 커피가 나오는 영상을 편집해 보았다.


재미가 있긴 한데, 그러면서 동시에 '나 이런 거 왜 하고 있지?'라는 자문을 해볼 때가 있다. 매일 바쁘다고 하고 시간 없다고 하면서도, 굳이 하나씩 영상을 촬영하고 제법 시간이 걸리지만 편집한 뒤 업로드하는 이유 말이다. 두서없이 맥락 없는 영상을 올리고 있는 나를 고민해 보니 그냥 그 두서없고 맥락 없는 게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인생은 무수한 점을 찍어 나가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진짜 요즘 내 모습을 보면 아주 산발적으로 점을 찍어대는 기분이다. 이제는 점을 찍은 것이 습관이 된듯하다. 그만큼 익숙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너무 익숙해져서 의미를 잊어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자주 묻고 있다. '나 이거 왜 하지?'라고.


어제 나름 현타를 경험하고 나니 힘이 주욱 빠져버렸다. 그간 열심히 해오던 것에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래서 먼저 겪어본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열심히'만' 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했나 보다. 아니라고 믿었는데 현실을 자각하니 내가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보면 오늘에 이른 게 어쩜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단적으로, 책상 위에 한 번도 펼쳐본 적 없이 쌓여만 있는 책들을 보면, 나는 결국 책 속의 지혜를 나의 삶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책을 사는 행위로 마치 내가 뭐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책이라 단적인 예로 책을 들었지만 비단 책뿐이겠는가. 오늘의 답답함은 결국 내가 쌓아온 시간의 결과물이라 여기며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그저 참담할 뿐이다.


어제오늘, 본의 아니게 참 맥 빠지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도 참 싫지만 뭐, 가끔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좌표를 찍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어 이 또한 기록으로 남겨본다.


'나아지겠지, 결국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긍정이 늘 나의 무기였는데, 요 근래에는 '근거'있는 긍정이 시급한 상황이 돼버린 것 같다. 지금이야 말로 아주 작은 행동으로 다시 나를 보듬어줄 때가 온 것 같다. 마음이 한없이 디프레스 되어보니 알겠다. 왜 책에서 이불 개기,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 커튼 걷고 햇살을 쬐어주기와 같은 별것 아닌 행동들을 이야기했는지.


평상시에야 별것 아닌, 아니 오히려 '뭐 이런 걸 하라고 해'라고 무시했던 것이, 지금의 나에겐, 아직 스몰 스텝이라도 뗄 의지가 남아있음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걸 보면 정말 힘이 많이 빠지긴 했나 보다.


뭐,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하고 싶은 거, 살고 싶은 삶은 결국 이룰 거니까. 뭐, 그럼 되는 거 아닐까? 그만 쳐져있고 방법을 찾자. 방법을!

오늘 편집한 영상. 책 속에 답이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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