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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24. 2023

남들의 칭찬이 버거운 나에게

이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네요

'나는 왜 남들의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걸까?' 오죽하면 나를 오래 알고 지내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나에게 '그냥 좀 받아들여요'라고 말할 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칭찬을 받는 게 버거워졌을까. 주말 사이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 그리고 이제부터 칭찬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인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동안 무엇이 나를 가로막았던 걸까?


겸손이 미덕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저 생각의 줄기를 타고 드문드문 기억나는 나의 역사를 거슬러가 보니 의식의 중심에 '겸손'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삶의 태도로서 겸손은 매우 훌륭한 가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겸손한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경험이니까. 그런데 겸손과 자기 부인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묘하게 헷갈리기도 한다. 돌아보니 어느새 나의 겸손은 자기 부인으로 뒤바뀌어 있었음을 분명히 알았다.


심리학적 근거는 모르지만 경험상 외적으로 나타나는 겸손과 자기 부인의 표현은 꽤나 유사해 보인다. 대체로 '아이고, 아니에요, 제가 뭘요'라는 식의 반응이다. 그런데 내면에서의 작동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겸손은 나를 인정한다. 나의 실력을 인정하고, 나의 기여도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손사래 치는 행동을 하면서도 마음은 너그럽고 여유로우며 풍족하다. 반면 자기 부인은 불안하다.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받게 되는 칭찬이 버겁기만 하다. 혹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질까 봐 슬그머니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선다. 끝까지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그럼에도 다음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동안 내 안에서 작동했던 마음은 자기 부인에 가까웠다. 정확히 진단받아본 적은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나의 완벽주의 성향을 언급했다. 어쩌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스스로 인정할 만큼의 수준에 서있지 못한 것에 대한 칭찬은 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 중에 완벽한 존재가 어디 있겠나. 그러니 늘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무의식 깊이 새겨두고 나를 세우는 말들을 모조리 튕겨내기 바빴던 것이다. 이제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동안 책 <역행자> 덕분인지 '자의식 해체'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자주 보였다. 나 자신을 한정 짓는 가짜 의식을 해체해야만 진짜 나로 살아가며 성장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책을 읽을 당시는 조금은 피상적으로만 와닿았던 이 표현이 이제는 보다 실감이 된다. 칭찬에 거부 반응을 일으켰던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나의 자의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그것을 해체할 수 있었다. 


물론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쉽게'라는 말을 쓰는 건 스스로 모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마지막 단계를 넘어서는 건 마치 책상 위의 스탠드 불을 켜는 것처럼 의외로 간단했기에 그렇게 표현했다. 이제는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러니 누구든 아낌없이 칭찬해 주시길. 굳이 부탁드려 본다.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처진 어깨에 뽕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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