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빙자한 일기 쓰기

'하면 되잖아, 어쩌겠어, 써야지'라고 되뇌며 쓰는 중입니다.

by 알레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진한 피로가 밀려온다. 모자란 체력이 못내 아쉬워 이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셔보지만, 오늘 하루,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이미 여러 잔 마신 탓일까. 카페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애꿎은 위만 자극해 손으로 위를 콱 움켜쥐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1박 2일의 가족 여행을 다녀왔는데 도착하자마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화장실 청소를 했다. 여행 짐을 정리하는 동안 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이 난 김에 여세를 몰아 그간 미루고 미룬 화장실 청소까지 해버렸다. 땀을 뻘뻘 흘리는 상태로 찬물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저녁을 먹는 동안 다시 슬슬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땀이 나지 않게 신경 써 보지만 아이를 씻기는 일이 남았다. 미지근한 물로 씻겨도 화장실 안에는 온기가 고여 늘 땀에 젖었기에 오늘은 미지근한 상태보다 조금 더 차가운 상태이면서 차갑지 않은 중간 언저리에 온도를 맞춰놓고 씻겼다. 다행히 온기가 채 차기 전에 목욕을 마쳤다.


신경 쓴다고 썼지만, 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정말 막을 수 없나 보다. 근데 그보다 미친 듯한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까의 그 상쾌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화장실 청소 후 느껴진 상쾌함의 크기만큼 피로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상쾌함이 그대로 치환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를 방에 눕히고 나와 자리에 앉았다. '글을 써야 하는데. 이 상태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속은 아프지만 다시 커피를 한 모금 삼켜본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줄 알았는데 깜짝 놀라 눈을 뜬 걸 보면 별반 효과가 없는 듯하다. 분주했던 이틀에서 벗어나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건만 고요함이 바로 곤함이 되어 정신을 놓을 줄이야.


각설하고, 오늘은 글쓰기에 대해 생각을 적어보고 싶었다. 쓰고 싶지 않은 날, 또는 도무지 쓰기 힘든 날에도 쓰는 방법이 있다. 쓰고 싶지 않은, 쓰지 못하는 이유를 쓰면 된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정말이다. 벌써 9개월째 주 5일, 매일 글쓰기를 이어오면서 이 방법을 종종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그냥 에세이를 빙자한 일기를 써보는 것이다. 가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일기 쓰는 수준이라고 평가 절하하며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의도인지는 알지만 동시에 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기 쓰기는 뭐 아무나 하나?' 참기름 한 방울처럼 자기반성과 성찰의 메시지 한 문장이라도 넣어주면 그것이야말로 에세이를 빙자한 일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독자'라는 존재를 염두에 두기 시작하면서 내 글은 '일기인가?' 하는 고뇌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럴 땐 그냥 습작 노트에 기록하는 셈 치고 끄적여 보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매번 통찰이나 적절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 타석 안타나 홈런을 날리기란 영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오늘도 썼다는 것이고, 그보다 전에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이니까'라는 생각을 남기며 오늘 나의 글쓰기를 변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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