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은 왜 매일 글을 쓰세요?

by 알레

글 쓰는 삶이 어느새 2년이 훌쩍 넘어가니 이제 나 자신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꾸준히 쓰는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는 듯하다. 누군가를 무엇으로 인식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내가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이야말로 이제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인 듯하다. 원래 뭐가 되었든 나는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게 제일 어려운 사람이니.


한 달에 한 번꼴로 이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


처음에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기록했다. 직장생활과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의 부조리, 문제점들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모여 험담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을 경험했다. 험담은 입으로 불편한 마음을 토설하듯 내뱉지만, 내뱉은 말이 다시 내 귀로 들어와 영 찝찝한 잔여물을 남겼다. 더욱이 여럿이 함께일 땐 여러 욕설이 한데 섞이느냐고 나면 이상하게 오히려 찌뿌둥하다. 마치 마사지를 받았는데 힘껏 누른 자리가 오히려 더 뻐근한 기분.


반면 글로 풀어내는 감정은 신기하게도 돌아오지 않고 글 속에 박제되었다. 입으로 내뱉은 말이 귀로 돌아오듯 글로 풀어낸 마음은 눈으로 다시 읽히긴 하지만 한결 정제된 상태였기에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정말 그렇게 부당한 게 맞나?' '그때 내가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들은 그럴만했던 걸까?'


외부로 향하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나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퇴사하고 더 이상 속풀이가 필요 없어지니 쓸 대상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다시 쓰기 시작한 건 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지난 2년 동안 참 많이 그리고 자주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함은 점점 나의 쓸모라는 점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한동안은 불안에 휘둘렸다. 폭풍 속에 있는 것처럼 거세게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그 순간마다 몸은 잔뜩 움츠렸지만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 덕분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불안은 존재한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불안한 나를 자주 바라볼 수 있었고 마음을 읽어내는 시간을 통해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분명 불안의 원인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수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써 놓은 글이 처방전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자기 효능감을 올려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40대 남자이고 가장인 사람이 2년 동안 뚜렷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나를 그나마 지탱해 주는 것은 글쓰기라는 생산 활동을 지속한 덕분이다.


글쓰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생산을 위한 에너지로 치환시켜 주었다. 1,200자 - 1,500자 정도지만 흰 바탕 화면에 채워지는 글자와 채우기 위한 창작의 고통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쌓인 글이 400개가 넘는다. 숫자를 맹신하진 않지만, 숫자의 힘은 인정하기에 이만큼 해온 나 자신을 보며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최근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잠시 쉬어볼까도 고민했었다. 에너지가 좀 고갈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쓰기 시작한 건 온전히 써오던 습관 때문이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의 몰입감과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난 뒤 밀려오는 시원함. 이제는 그것이 일상의 루틴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글쓰기 루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아직은 득이 더 많은 것 같다. 육아하고 살아갈 궁리를 해야만 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글 쓰는 시간뿐이다. 그래서 이것을 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또 매일의 글쓰기를 이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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