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절기가 들어맞는 게 정말 너무 신기하다. 한여름 폭염도 입추가 되고 처서가 지나면 신기할 만큼 수그러든다. 가을이 오니 공기의 질감도 달라진다. 한여름 더위와는 달리 가을 더위는 무겁다는 느낌보다는 따갑게 찌르는 느낌이랄까.
계절마다 불청객이 있다. 봄에는 황사, 여름에는 곰팡이, 가을엔 비염이 그리고 겨울엔 결로. 전혀 반갑지 않지만, 덕분에 절기와 함께 삶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톡톡히 느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여름 나절 변함없이 늦게 잠들기를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건만 왜 비염은 꼭 가을이 시작되는지. 물론 비염의 원인이 일교차나 환경적 요인이 크겠지만, 누적된 피로도 한몫하기에 늘 같은 패턴으로 살아오는 나에게 의문과 동시에 불만 아닌 불만을 품게 만든다.
가을의 시작은 8월에 있지만 9월이 되어야 비로소 가을인 것 같다. 다분히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그 때문인지 8월 말까지는 아직 마음 한구석 여름의 들썩거림이 가시질 않는다. 불과 하루 차이지만 8월 31일의 흥분은 9월 1일이 되면서 사그라든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의 정서가 좋다. 단풍 진 색깔들도 좋고, 코트를 둘러 입고 거리를 거니는 멋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좋다. 유난히 높고 파란 하늘도 좋고, 가을이 무르익어 갈수록 따가운 햇살도 포근하게 변해가는 느낌이 좋다. 여름 내내 불쾌지수가 높아 맥을 못 추고 지냈다면 가을은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비록 비염으로 내내 고생하기도 하지만.
기대와 희망의 계절, 가을의 시작인 9월답게 또 새로운 챌린지 모임에 참여했다. 영어 원서 읽기 모임. 안 그래도 갓생사는 요즘 덜어내도 모자랄 판에 자꾸 뭔가를 더하는 나도 참 스스로 지독한 인간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뭐든 더 하고 싶은 사람인 걸 어쩌겠나.
가끔은 갓생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왜 이러고 사나?' 싶을 때도 있다. 아, 심지어 나는 내가 갓생러라는 것을 최근에야 인정했다.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은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워낙 배우는 걸 좋아하고 성장을 위해 애쓰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니 이러고 사는 게 갓생인줄도 모르고 살 만큼 익숙했다. 그런 나이기에 오히려 축- 쳐지는 여름은 얼마나 괴로웠겠나.
이제 올해도 넉 달 남았다. 올해 안에는 꼭 불안정한 삶에 안정의 물꼬를 터뜨려 줄 계기를 만들어야 할 텐데.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잡아 본다. 상기하지만 나에게 가을은 기대와 희망의 계절이다. 그러니 올가을엔 새로운 문을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