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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알렌살롱

오늘 저랑 커피 한 잔 할래요?

- 커피를 사랑하는 애호가이며 무엇보다 커피에 진심입니다.

by 알레

지하철을 나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는 눈 감고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방향으로 걸어가다 자연스럽게 커피숍 안으로 들어간다. 출근길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 오후 3시 즈음에는 라테 한 잔을 주문한다. 테이크 아웃 컵이나 직접 들고 간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담아 손에 들고 나와 다시 분주히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늘 꿈꾸던 직장인의 자화상이었다.




첫 경험은 중학생 시절이었다

잠시 시간을 돌려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 커피와의 만남은 중학생 시절로 기억한다. 어렴풋한 기억이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기억 속 커피는 그냥 집에서 부모님이 드시던 원두 알갱이를 뜨거운 물에 몇 스푼 넣어 만든 블랙커피다. 언제나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던 그 시절 밤샘을 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은 늘 마셨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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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어서도 사실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냥 커피라서 마셨고, 그냥 이른 아침 등교하여 강의에 들어가기 전 조용한 교내 카페에서 싸구려 원두커피 한 잔 마시는 내 모습이 좀 분위기 있다고 혼자 착각하며 마셨던 게 전부다. 한참이 지나서야 별다방이니 콩다방이니 하는 소위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 매장에 가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문하는 것조차 낯설었다. 그나마 전공이 스페인어라 '그란데(Grande)'라는 단어 하나는 익숙했다. 시간이 지나며 차차 커피숍 문화에 젖어갈 무렵 어느새 커피숍에서 하루를 죽 때리는 사람이 되었다.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으며 그런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도 난 커피 맛을 제대로 알고 마시는 사람은 아니었다.




첫사랑을 만났다

동네에 마치 홍대 앞에나 있을 법한 커피숍이 하나 오픈했다. 커피 애호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던 매장은 어느새 나의 단골 가게가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핸드드립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한 핸드드립 커피의 원두 품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느낌만은 생생하다. 지금 까지 마셨던 커피들은 가짜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저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테가 이 전까지의 커피 취향이었다면 이제는 산미와 품종에 따라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다.


커피 한 잔을 값으로만 판단하면 핸드드립 커피는 다소 사치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핸드드립 커피 한 잔에 담긴 풍미는 그 값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로스터리 카페였던 만큼 신선한 원두를 사용하다 보니 향기부터 달랐다.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가서 메뉴판에 있는 모든 드립 커피를 다 마셔보았다. 산미가 강한 것부터 구수한 느낌이 나는 것과 독특한 과일 향이 느껴지는 커피까지 정말 다채로운 느낌을 담고 있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면 우선 테이블에 놓인 상태로 살짝 향을 맡아본다. 그리고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와인 한 모금을 음미하든 입 안 구석구석 커피로 잘 적셔준뒤 삼킨다. 그러고 나서 잠시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과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잔향을 느껴본다. 내 나름의 의식 같은 행위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다.


핸드드립 커피는 절대 급하게 마시지 않는다. 서서히 식어가는 온도의 변화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결코 시간을 서두르지 않듯 커피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얼른 마시고 일어나기에는 충분히 즐기지 못함이 아깝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커피를 마실 때 서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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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장 신선한 원두로 한 잔 부탁해요

이제는 핸드드립 전문점이나 로스터리 카페가 많이 오픈했다. 나름 커피 애호가로 살아온지도 벌써 10년가량 된 것 같다. 한 때는 메뉴판을 보며 품종을 고르기도 했고, 또 한동안은 융드립에 빠져있던 적도 있었다. 산미를 크게 가리지 않아 굳이 까다롭게 가려가며 주문하지도 않는다.


한창 빠져 살 때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가지고 커피숍을 평가하기도 했다. 참 기고만장한 서당 개였다. 뭣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는 핸드드립 전문점이라면 어느 매장을 가나 그냥 이렇게 주문한다. "사장님, 오늘 가장 신선한 원두로 한 잔 부탁드려요", 또는 "사장님께서 가장 맛있는 걸로 한 잔 내려 주세요." 그리고 커피가 나올 때 어떤 품종의 커피인지 슬쩍 여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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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원두 품종을 알려주고 맛있게 드시라는 말 한마디만 건네지만 더러는 사장님과 긴 대화가 시작된다. 대게는 자신의 커피에 자부심을 느끼시는 분들이다. 재밌는 것은 한 편의 서사가 담긴 커피는 더 맛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한 잔을 주문했을 뿐인데 그 한 잔에는 몇 시간이 짧게 압축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또한 커피를 더 잘 즐기는 나름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삶의 일부

생각해보면 커피의 세계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누군가는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선호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여전히 그 비싼 돈 주고 왜 마시냐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어떤 이는 사무실 탕비실에 비취 된 커피 한 포면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나처럼 이왕이면 맛있는 커피를 선호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냥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 것이 커피이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커피숍이어야만 제대로 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도 결국 음식이라 일단 원두가 신선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맛이 있다. 나머지는 바리스타의 손 맛이다. 그러니 커피가 이러네 저러네 굳이 말을 많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그냥 한 잔이 비워지는 시간만큼 여유를 즐기다 가면 그만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한 손에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또 더 이상 이러한 분주함이 나에게 직장인의 자화상도 아니다. 그 시절 나에게 커피는 그저 하루의 잠을 깨우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 할래요?'라는 말을 건넬 때 가벼운 인사치레 정도로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합니다'라는 의미를 담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분에게 커피 한 잔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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