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 또한 알렌 작가님과 같은 커피에 진심인 사람으로서 커피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겠다. 나에게 커피란, 향 그 자체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향을 맡는 것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과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커피 향 덕후다.
커피는 향으로부터 시작하여 향으로 끝난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커피를 내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커피 향 덕후는 오늘도 향기롭게 커피를 시작해본다. 원두는 커피빈의 '모카 자바 블렌드'로 선택했다. 원두를 그라인더에 담기 위해 원두 봉지를 여는 순간 고소하고 상큼한 향이 공기 중으로 퍼져 코 끝을 감싼다. 전동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아 드리퍼에 쏟아붓는다. 드리퍼를 살살 흔들어서 커피가루를 평평하게 만들어준다. 뜨거운 물을 드립포트에 담아 가느다란 물줄기로 커피가루를 적시면 커피 빵이 봉긋하게 솟아오르며 고소한 향을 양껏 뿜어낸다. 3번에 걸쳐 뜨거운 물을 나눠 부어 커피를 추출한다. 추출한 커피는 서버에서 텀블러나 머그에 담아 마실 준비를 끝낸다.
서툴지만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으로 돌아온다. 뜨거운 커피를 한 김 불어 식힌 후 입안에 머금는 순간 느껴지는 맛과 향, 목으로 넘기고 코로 숨을 뿜을 때의 향을 느끼며 음미한다.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자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바로 커피를 내리며 향을 느끼는 일이다. 이처럼 나에게 커피란, 그저 잠을 깨기 위한 카페인 보충이 아닌 다채로운 향과 맛을 느끼는 재미이자 행복이다.
나의 하루를 여는 이 커피 향, 커피 한 잔은 매우 심각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던 과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이미지 출처 - Photo by Art Rachen on Unsplash
2009년 8월, 무더운 여름이었다. 낡은 건물, 공용 화장실이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일을 했던 나는 오후 3시만 되면 코를 찌르는 원인불명의 악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혼자 끙끙 앓다가 함께 일하던 입사 선배이자 동갑내기 A에게 고충을 털어놓자 맞장구를 치며 본인도 나와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악취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방향제와 탈취제를 사서 뿌려보기도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악취에 시달리기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식사 후 산책 겸 취미 생활을 위해 근처 슈퍼에서 간식거리 구경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무심코 지나치던 커피 진열 매대에서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일회용 핸드드립 커피'였다.
'오, 그래! 이걸 사무실에서 내리면, 기분 나쁜 악취를 엎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당일 오후 3시쯤, 시큼하고 꿉꿉한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타이밍에 점심시간에 구입한 '일회용 핸드드립 커피'를 뜯어서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잠긴 커피가루는 향긋한 커피 향을 사무실 곳곳에 퍼뜨렸다. 그리고 이내 내 코를 괴롭히던 악취가 말끔히 사라졌다. 방향제를 둬보기도 하고, 탈취제를 뿌려보기도 하고, 사무실 구석구석 닦아보아도 사라지지 않던 기분 나쁜 악취가 커피 향을 통해 해결된 것이다. 함께 고통을 느꼈던 A도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악취가 사라지냐며 신기해하고 기뻐했다.
"왜 이제야, 너를 만났을까. 드립 커피야 고맙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설픈 솜씨로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다. 스타벅스 커피의 쓴맛을 멋으로 알고 먹던 내게 부드럽고 향도 좋고 가격도 적당한 '일회용 핸드드립 커피'는 회사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커피를 탐구하는 재미에 빠져 드립 커피에 더 깊게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좀 더 신선하고 맛있는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일회용 드립 커피를 졸업(?)하고 하나 둘 핸드드립을 위한 장비를 들이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은 '드리퍼'였다. 가볍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플라스틱 드리퍼를 선택했다. 원두는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핸드드립용으로 갈아서 구입했다. 갈아온 원두는 다 먹어갈 쯤엔 이상한 쩐내(?) 같은 냄새가 나기도 했고 처음과 커피 맛도 달라졌다. 혹시 다른 원두는 괜찮을까 싶어서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다른 블렌드로 구입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검색을 통해 이유를 알고 난 후 세 번째 원두는 홀빈 상태로 구입했다. 입문자용 전동 그라인더도 함께.
서툰 솜씨지만 그라인더로 원두를 직접 갈아보니,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오랜 시간 동안 커피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원두를 계량스푼으로 퍼 낼 때 손에 전해지는 느낌, 원두가 스푼에 닿아 부딪히는 소리, 그라인더에 담을 때 '또로로' 떨어지는 소리,원두가 '드르륵' 갈리면서 공기 중에 마구 퍼지는 커피 향을 느끼는 과정들이 모조리 빠짐없이 다 좋다.
드립포트가 없어서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부어 주둥이를 뾰족하게 만든 뒤 가는 물줄기를 만들어 커피를 내렸다. 임시방편으로 제법 괜찮은 수였지만,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기에 결국 드립포트도 장만하게 된다. 초보자용으로 3만 원대의 가격으로 구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립포트 구입 이후 나는 '커피 빵'보는 재미에 빠져 다른 이의 커피까지 내려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다 품은 가스를 내보내며 '팡'하고 터지는 커피 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 걱정으로부터 잠시 멀어질 수 있어서 좋다.
자, 이제 마지막 장비가 남았다. 내린 커피가 담기는 서버, 바로 드립 서버다. 그 간 커피를 내릴 때 머그나 텀블러에 바로 내렸기 때문에 드립 서버의 필요성은 딱히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그나 텀블러는 내부가 보이지 않으니 내리는 커피의 양이 얼만지 알 수 없다는 불편함이 있었고, 원두를 구입하기 위해 자주 가던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마침 세일을 하고 있길래 700cc 용량의 드립 서버를 구입했다. 이로써 '그라인더-드리퍼-드립포트-드립 서버' 핸드드립 사총사가 다 모였다.
12년이란 세월 동안 다양한 원두를 구입해서 내려 마시면서 나만의 취향이란 것이 생겼다. 새로운 카페에 가면 반드시 '오늘의 커피'나 '(핸드) 드립 커피'를 마셔보며 내 취향인지 아닌지를 판단해보는 잣대도 생겼다. 변덕쟁이 입맛을 가진 나는 하나만 주야장천 고집하기 힘들어한다. 때문에 적어도 3종류 이상의 원두를 구비해 두고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느 날은 산미가 찬란한 '예가체프'로 어느 날은 잔잔하며 가볍지 않은 '콜롬비아'와 '모카 자바 블렌드'로 또 어떤 날엔 아무 고민 없이 애정 하는 원픽! '케냐'를 골라 마시며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오늘 내가 풀어낸 '커피 한 잔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악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연히 발견한 '일회용 드립 커피'를 시작으로 커피 향 덕후가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당신은 어떠한가? 드립 커피의 매력 중에 어떤 부분에 끌려 계속 드립 커피를 즐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