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밀려올 때 당신에게 한 잔의 여유를 선물해 드립니다.
이른 새벽,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려고 노력하며 차를 우려 마시고 지나간 어제와 다가올 오늘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동요하는 마음이 제법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보이차도 커피처럼 누가 우려내느냐에 따라 그 맛이 아주 달라지는데, 과정에 집중하고 서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JuneK 작가님의 글 <차를 우리는 시간, 마음을 우리는 시간> 중에서
https://brunch.co.kr/@junekook/28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나름 커피 애호가다. 밥 값은 아껴도 커피 값은 아끼지 않을 만큼 커피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효용은 한 끼 밥 보다 크다. 그래서일까, 커피를 마시는데 아주 조금은 까탈스러운 부분이 있다. 일단 저렴하고 양으로만 승부 보는 매장은 선호도가 낮다. 실상은 모르지만, 그저 혼자만의 뇌피셜로 좋은 품질의 원두는 절대 그 가격으로 커피를 내릴 수 없다고 믿기에.
커피도 지역과 품종, 그리고 현지에서의 모든 전처리 과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거기에 로스팅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리고 마지막엔 바리스타가 어떻게 내렸냐에 따라 본연의 개성이 살아날 수도 있고 완전히 죽을 수도 있다.
커피는 나에게 그저 식후에 입가심을 위한 검은 물이나, 식곤증을 이겨내기 위한 카페인 음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유의 개성이 담긴 하나의 음식과 같기에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 물론 그렇다고 프랜차이즈 커피나 저렴한 커피를 안 마신다는 건 아니다. 선호도에서 후순위일 뿐, 난 믹스부터 드립까지 일단 커피는 기본적으로 다 좋아한다. 아무튼.
신혼 초에는 캡슐 커피로부터 시작했다. 간편하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는 캡슐 머신. 무엇보다 우유와 섞어 라떼로 마시기에는 캡슐 커피가 잘 어울렸다. 아쉬운 건 한 잔의 양과 에스프레소의 맛. 결국 성에 차려면 2~3번은 내려야 하니 이것도 은근 번거롭고 귀찮았다. 맛은 뭐, 일단 중간이면 다행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다음엔 기계식 커피 메이커를 사용했다. 가정용 소형 에스프레소 머신이었는데, 일단 이건 사용 후 관리가 영 손이 많이 간다. 매번 세척을 해야 하고 다른 무엇보다 대용량 추출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핸드드립으로 넘어왔다. 누군가는 드립커피야 말로 귀찮지 않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오히려 간편하다. 커피 찌꺼기는 필터와 함께 버리면 되니 한방에 해결되고, 드립퍼나 서버는 물로 헹구기만 하면 되니 손쉽다. 그런데 관리의 측면보다 더 중요한 건 커피 한 잔을 대하는 진정성이고 나를 위한,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을 위한 정성이다.
JuneK 작가님의 글처럼 그냥 마시고 끝나면 한 잔 커피에 불과하지만, 과정을 따라가 보면 이것은 그저 한 잔 커피가 아닌 나를 위한 한 잔의 여유이고, 한 잔의 정성이며, 한 잔의 진심인 셈이다. 폴폴폴 부풀어 오르는 커피번을 바라볼 때의 느껴지는 따스함과 구수한 향기가 코 끝에 닿을 때의 안정감. 그리고 쪼르르 흘러 담기는 소리는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의 한 장면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JuneK 작가님의 글에서 유독 이 한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 '과정에 집중하고 서둘지 않는 삶.' 나는 오늘도 한 잔의 커피를 내리며 나의 조급함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리고 과정에 집중하고 서둘지 않는 삶의 가치를 한 잔의 커피에서 느끼게 된다.
사실 차 한 잔이면 어떻고, 커피 한 잔이면 또 어떤가. 그리고 또 담배 한 모금이면 그것 또한 어떤가. 서둘지 않아도 되는 잠시의 시간을 나에게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으로도 오늘의 나의 마음을 돌봐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