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의 첫 만남부터 나만의 취향이 생기기까지의 이야기
대학생이 되어 내가 가장 처음 마신 커피는 '카페모카'였다.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쓴 커피보다 달달한 커피를 즐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시꺼먼 커피를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부드러운 크림 아래로 초콜릿의 달콤 쌉쌀한 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커피 한 잔. 이게 나의 성인이 된 후 맛 본 비싼 커피의 첫 경험이다.
이후로도 나는 계속 단맛이 나는 커피를 즐겼고 아메리카노는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홍대입구 역 근처의 파스쿠찌를 가게 되었고 늘 마시던 커피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놀라 제일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매우 작은 잔에 들어 있던 새까만 액체를 별생각 없이 입에 덴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으악..!!! 써!!!!!!
너무 써서 혀가 마비되는 그 느낌이란...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때 느낀 놀라움과 쓴맛이 기억에 남아 있다. 도저히 그대로 먹을 수 없었던 나는 픽업대에 가서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얼음컵을 받아와서 남은 에스프레소를 부어서 '아메리카노'로 만들어먹었다. 이제 와드는 생각인데, 그 직원 참 다정했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 가격 차이가 있는데 에스프레소 시켜놓고 쓰다고 얼음컵을 요구하는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래도 불편한 기색 없이 내게 얼음컵을 건네준 그 직원분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처럼 우연히 주문한 '에스프레소'는 달달한 커피만 마시던 내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커피의 쓴 맛을 알려주었다.
스물여섯, 웹 에이전시의 막내로 일을 하던 내게 스타벅스의 커피는 왠지 성공한 사회인의 필수품 같았다. 영화에서도 멋지게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출근길엔 늘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가 들려있었다. 사회 초년생 티를 아직 벗지 못한 나는 그저 그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샷 추가해주세요.
'에스프레소'의 쓴맛에 놀라 기겁을 했던 애송이는 이제 없다. 씁쓸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터로 향하는 내가 왠지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처음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도 특유의 진하고 쓴 맛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멋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계속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의 일상에 커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는 샷 추가를 하지 않지만, 차갑게 마실 때는 꼭 샷 추가를 해서 마신다. 그 이유는 얼음이 녹으면서 맛이 연해지기 때문이다. 멋진 어른이 즐기는 커피가 내게는 '아메리카노'였다. 괜한 겉멋이 들었던게지.
커피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계기는 '서울 카페쇼'에 다녀온 후부터였다. 오래전 기억이고 사진도 분실하여 정확한 년도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2008년이거나 2009년이지 않았을까. 여기저기 구경하기 좋아하는 나는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리는 박람회, 전시회 등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카페쇼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날도 심심해서 뭐 볼 게 없나 구경하러 들렀던 코엑스에서 우연히 서울 카페쇼를 방문하게 되었다.
입장권을 구입할 때부터 코로 느껴지는 커피 향이 정말 기분 좋았다. 기분 좋게 관람을 위해 입구를 들어선 순간부터 나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다양한 종류의 커피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디저트류까지 생전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았기에 큰 전시장을 지치는 줄도 모르고 싹싹 훑고 다녔다. 이 날 처음 드립 커피를 보았고 다양한 차의 종류를 알았다. 원두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과 원두에 따라 맛과 향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동안 내가 마신 커피는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이후 나의 커피 라이프는 제법 큰 변화가 생겼다. 모든 커피집에 가서 '오늘의 커피' 혹은 '드립 커피'를 주문해서 꼭 마셔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맛과 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드립 커피에 관심이 생겨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드립 커피를 구입하여 마셔보기도 했다. 커피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찾아보면서 자연스럽게 원두에 대해, 커피 종류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커피들을 경험해보는 재미로 커피를 즐겼다.
이제는 취향이란 것이 생겨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두는 싱글 '케냐', 블렌드 '모카 자바'로 따뜻하게 마셔도 차갑게 마셔도 매력이 있는 원두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커피 브랜드는 '커피빈'을 최고로 좋아한다. 여기 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 블렌드)가 내겐 제일 맛있다. 적당히 고소하고 씁쓸한 진한 맛이 밸런스가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는 내 입에 쓴맛이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스타벅스에서는 드립 커피를 주문하거나 콜드 브루로 마시는 편이다.
요즘은 환경문제가 심각해져 테이크아웃 커피에 인쇄하기보다 컵홀더에만 시즌별 디자인을 넣는 편이지만 그 전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프랜차이즈 커피점의 테이크아웃 컵이 예쁜 색을 입고 나왔었다. 그 컵이 예뻐서 매일 모아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서 사무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쓰기도 했다.
오늘 정말 주절주절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았다. 커피를 처음 시작하게 된 사건부터 본격적으로 즐기게 되고 나만의 취향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적다 보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커피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여러분은 언제 어떻게 커피를 처음 시작하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