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따뜻한 커피 한잔을 기다리는 순간
가을이 다가오는 선선한 아침 산책을 나가면 문을 채 열지 않은 점포들 사이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좁은 테이크아웃 커피숍 앞의 진풍경이다. 줄 지은 사람들의 기다림이 막 시작되었다. 그 기다림 속에 커피콩 가는 소리, 치익치익 스팀 기계로 우유 데우는 행복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향긋한 커피 향과 함께 잘 어우러져 널리 퍼진다. 이 향긋하고 부드러운 향으로 커피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와 기대를 감출 수 없다. 커피 한잔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직장인의 평일 오전 모습이다. 동료 직원들과 약속이나 한 듯 만나게 되는 곳은 커피를 내릴 수 있는 탕비실이다. 그 공간에서 각자의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길 바라며 서로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어제 봤던 재밌는 프로그램 이야기, 출근길에 있었던 이야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커피 한잔 속에 담긴다. 이 커피 안에 기다림과 사소한 우리의 일상 이야기가 살며시 스며들어 있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아버지가 8년 전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미사키의 등장으로 영화《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이 시작된다. 인적 없는 해안가 땅끝마을,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서 '요다카 카페'의 문을 열고 아버지를 기다린다. 카페 이름인 '요다카'는 못생긴 쏙독새로 미사키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해 지은 이름이다.
이웃에 살고 있는 싱글맘 에리코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매일 타지로 일을 나가 아이들은 매일 밤 집 앞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철없는 싱글맘 에리코는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바란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두 여인은 서로 부딪치게 된다. 이 두 여성은 스쳐가는 인연에도 온정을 나눌 수 없을 만큼 각자의 삶에 지쳐있다. 에리코의 딸 아리사는 엄마보다 미사키에게 더 의지하게 되고 그녀에게 쏙독새처럼 훨훨 날아가 떠나지 말라 당부한다.
저기 커피 마시지 않을래요?
미사키의 한마디로 둘은 카페 테이블에 앉아 마주한다. 커피 두 잔과 함께 대화를 시작하기엔 기다림이 필요하다. 커피콩을 갈아야 하는 시간, 서버와 드립퍼 위에 뜨거운 물 한잔을 붓고 예열시키는 시간, 필터를 올리고 뜸 들이듯 주전자의 기울기를 조절해 원두를 부풀리는 시간, 향을 음미하는 시간 모두를 포함한다. 이 시간에는 부드럽게, 천천히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들이 커피빵과 함께 떠오른다. 어릴 적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추억, 에리코가 아이들과 걱정 없이 환하게 웃던 그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데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 받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조금씩 물을 부어 커피 한잔을 만들 듯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어쩌면 세상의 끝과 맞닿아 외롭고 견디기 힘든 시간 속에서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는 건 기적이 아닐까? 이 기다림을 견디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커피에 온기를 더하고 행복을 담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