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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길었으면 좋겠다

by 알레

새벽일을 마치고 귀가했다. 씻고 잠자리에 드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피곤한 몸 덕분에 금방 잠에 들었다. 오늘은 아내가 출근하는 날이다. 아이랑 함께 셋이 나란히 누워 자는 침대. 엄마의 빈자리를 감지했는지 평소 늦게 일어나는 아이는 오늘따라 일찍 눈을 떴다. 그 덕에 나도 함께 눈을 떴다.


아내의 출근길에 동행하여 아이 등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적잖이 몽롱함을 느꼈다. 집에 가면 간단하게 뭐 하나 먹고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쉬이 잠이 들지 못한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멀었는데, 부족한 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편치 않다. 잠들어 버리면 하루가 다 끝나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밀려온다. 머리로는 지금 좀 자야 오늘도 계속되는 새벽 알바까지 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 예전에도 이랬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대체로 잠자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이였지만 이 정도로 하루를 재촉하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때와 다르게 최근 유독 이런 마음이 자주 드는 건 '하원 시간'이라는 마감이 생긴 뒤부터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현실의 불안감에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마음 한편에 늘 자리한다. 그래서 오히려 한 가지에 집중 못하게 되지만.


'하루가 길었으면 좋겠다. 아니,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몸뚱이였음 얼마나 좋았을까.' 욕망이 불타오르는 상상을 해보지만, 상상하는 순간에도 턱이 빠질 듯 연신 하품하는 나를 보며 혼자 혀를 끌끌 찬다.


하루가 길어지면 좋겠지만, 달리 보면 길어진 시간만큼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도 길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40대를 살아가는 아빠보다 넘치는 체력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싶어 하는 35개월 아들의 시간이 월등히 길어질 게 뻔하다. 결국 더 빠른 속도로 체력이 소모되겠지. 하아. 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냥 하루가 24시간이고, 인간에게 수면이라는 중요한 섭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길어진 하루에 대한 마음은 하루를 소거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조급함이 이 책 저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쌓아놓게 만들고 정작 무엇하나 깊이 읽지 못했던 지난날과 달리 죄다 꺼내두고 하나씩 다시 꽂아두며 오늘, 지금 가장 집중해야 할 것 한 가지만 남긴다. 여전히 갈팡질팡, 책을 꽂았다 다시 꺼내기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 나아간 나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하루에 한 가지만 제대로 집중해도 한 달이면 서른 가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늘 하루를 쪼개기 바빴다. 더 잘게, 더 세밀하게. 인수분해 하기 바빴다. 한 달이 지나 돌아보면 '나 뭐 했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이 때문이었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았던 건 언제나 조급함 때문이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되었나 보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왕 현실이 이렇게 된 마당에 이 시간을 나를 위해, 아이와 아내를 위해 더 값지게 사용할 수는 없을까?' '어쩌면 지금 이 시기는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어서 허락된 시간인데 그걸 '조급함'에게 내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순간 여러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매일 소거하는 삶을 실천하며 더욱 밀도 있는 삶에 집중해 보기로 다짐해 본다. 잘라낼 건 과감하게 잘라내어 아이와의 시간을 침해하지 않도록 나의 삶을 조정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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