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마른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불 쏘시개로 살짝 후비적거렸더니 화르르 타오르는 불에 주변이 금방 온기로 가득하다. 벽난로 앞 바닥에 깔려 있는 부드러운 양모 카펫에 앉아 우리 셋은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언제나처럼 보통의 겨울밤을 흘려보냈다.
- 아빠의 로망 기록
있지도 않은 벽난로와 벽난로 앞에서의 코코아 한 잔의 추억은 그저 아빠로서의 나의 로망이다. 언젠가 아이와 아내와 셋이 이런 하루를 보내는 게 꿈이랄까. 영화 속에서 본 장면 때문일까 아니면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사진들 때문일까. 머릿속에 남아있는 장면은 언제나 서정적이다. 그냥 따뜻하다. 실제로 그 공간이 어떤 느낌일지도 모르면서 마음 깊이 따스함을 느낀다.
벽난로와 코코아. 추운 겨울에 따스함을 자아내는 마법 같은 단어. 비록 경험은 없어도 단어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이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 낸다. 그 착각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착각인 줄도 모를 정도다.
어쩌면 이것도 심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장면을 마치 눈에 보이는 듯 떠올리다 보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라면 언젠가 우리가 이런 겨울밤을 함께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 그리고 정말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12월의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요즘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가 있다. 쉽지 않았던 아내의 임신 과정, 모두를 기쁨에 젖어버리게 만들었던 아가의 출산. 삶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남과 더불어 나아갈 시간에 대해 무수한 질문이 생겨났던 시간을 지나 퇴사에 이르렀던 2년 전. 그리고 셋이 함께 떠난 제주 한 달 살이의 추억. 이후로 2년 동안 숱한 감정의 부침을 겪어오며 이제야 조금은 파도를 탈 줄 알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걸어가야 할 길은 아득하지만 이제 겨우 중심을 잡아가기 시작하니 비로소 내 삶의 중심에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면서 가장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 그래서 깨어지지 않도록 잘 붙잡아야 하는 나의 단 한 가지가 바로 나의 가족이었다.
나는 늘 나의 아이가 안전하길 바란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가장 순수한 존재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나의 아내가 늘 행복하길 바라며 매일 아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이 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 나에겐 아내가, 아내에겐 내가, 그리고 아이에겐 우리 둘이 서로의 버팀목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타들어가는 장작불이 꺼질 즈음 스미는 겨울의 찬 기운에도 잃어버리지 않는 온기를 간직한 우리가 될 수 있길, 평생 그렇게 살다 주어진 삶의 끝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마음속에 타들어가는 벽난로 앞에 앉아 코코아 한 잔을 들고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나의 로망이 실현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