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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an 07. 2024

낮잠 한 번 자기 정말 힘들다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가진 몸부림을 다 치면서 오늘도 옥신각신이다. 주말이면 언제나 아들과 낮잠을 자니 마느니 하며 소동이 벌어진다. 잠 좀 자라고 제안과 설득, 타협을 시도하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히려 더 격양되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결국 가장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서야 상황이 종료된다. 


힘의 절대적 우위에 있는 자가 쓰는 가장 치사한 방법.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의 일부를 탈취하여 낮잠을 자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겠다는 말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방법이다. 이걸 적으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치사하긴 하다. 그저 낮잠을 재워야겠다는 일념으로 강제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해 본다.


어쨌거나. 결국 잠이 들어 금방 곯아떨어지는 아이를 보면서 뭐 하려고 저리 버티나 싶은데 이내 부질없는 생각임을 깨닫는데. 아이는 딱 나를 닮은 건데 누굴 탓하고 뭘 굳이 이유를 물을까.


사실 나도 잠자는 시간을 매우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는데 결국 습관이 그렇게 들었을 뿐이다. 결혼도 하기 전 아주 오래전에는 즐겨하던 PC 게임에 몰입해서 새벽 늦기까지 꽤 있던 적도 있었고, 석사 논문을 쓸 때는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을 미련하게 붙잡고 앉아있느라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랑 함께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즐거워서 잠을 미뤘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정말 삶에 대한 고민 탓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냈더니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건 굉장한 도전과제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학창 시절부터 긴 세월을 돌아보면 언제나 잘 자는 친구들이 성적도 좋았다. 잘 자는 직장 동료들이 하루를 더 생산적으로 보냈다. 잠을 잘 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일상에 얼마나 필요한 요소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늘 거부했다. 밤잠도 이런데 하물며 낮잠은 오죽할까. 그리고 그 피를 물려받은 내 아이는 또 어련할까.


고백하자면 지금도 아이와 함께 누워있다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방에 들어와 글을 쓰는 중이다. 물론 매일 글쓰기를 하겠노라.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 역시 습관대로 잠들지 못함이 더 크다.


육아하면서 항상 생각한 건 아이가 잘 때 같이 자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래전 TV 예능 프로그램처럼 선택지 앞에 선다. 선택 A. 아이와 함께 잠든다. 선택 B. 개인 시간을 갖는다. 99%는 B 안을 선택했다.


몸이 좀 고달파도 견디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내 시간을 갖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간접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글을 쓰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시간. 꼭 잠을 자지 않아도 나에겐 쉼이 되어주는 이 시간이 좋아서 낮잠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겐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 건 지나치게 모순된 행동이려나?


어쨌든, 오늘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에야 아이는 엄마 옆에 누워 잠에 들었다.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머리맡에 잔뜩 진열해 두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쌔액쌔액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 낮잠인지 아닌지 모를 오후 5시 30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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