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두가 잠든 밤. 홀로 방 안에 앉아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았다. 의도 한 건 아니지만 조용히 하루를 그리고 한 해를 돌아보았다. 아마 다이어리가 하나의 연상 작용의 스위치가 된 듯하다. 사진들을 빠르게 훑어보는데 왜 자꾸 눈물이 고일까. 무엇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걸까.
주말에,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더한 3일의 휴일.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아내의 독감으로 아이와 아내 모두를 편안하게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오히려 나도 모르게 어딘가 날이 서 있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부정하듯 유난히 더 엄마에게 치댄다. 어떤 말로도 설득도 타협도 되지 않는 상황에 심적인 고됨은 더 깊어진 하루였다.
이런 날은 잘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폭발한다. 불안한 상황을 인지했는지 방 안에 누워있던 아내는 결국 밖으로 나와 아이를 달랜다. 어떨 땐 그냥 아빠여서 거절당하는 기분도 든다. 특별히 윽박지르거나 짜증 섞인 말투였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아빠'여서 거절당하는 기분이 들 때는 점점 빡침의 게이지가 차오른다.
미운 3살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돌아서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싶지만, 그 순간엔 진짜로 화가 난다. 몇 번은 그대로 폭발하여 쏘아댄 적도 있지만 그래봐야 남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이제는 잠시 자리를 피하고 본다. 근데 하필 아내가 아파서 힘들어하는 상황에 이러니. 해결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기만 하다.
아이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땐 언제나 아이가 졸릴 때다. 내 아이는 날 닮아서 그런지,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끝내 낮잠을 자지 않는다. 누가 봐도 눈이 풀려있는데. 자기 입으로 졸린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아이는 버틴다. 극도의 졸음을 버티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듯, 피크를 넘어선 아이는 다시 쌩쌩해진다. 그러나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결코 멈춰 선 게 아니었음을 잘 안다. 마치 노래방에서 20분 더 넣어주는 것처럼 그저 잠시 유보되었을 뿐이다.
낮잠의 고비를 넘어선 날은 어김없이 저녁때 뭔가 터진다. 저녁밥을 먹을 때 또는 씻어야 할 때 또는 이빨을 닦아야 할 때. 이도 아니면 잠잘 때. 결국 한 번은 터진다. 그리고 그럴 땐 어김없이 아내도 터진다. 정신도 육체도 털리고 난 하루는 고요함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근데 왜 눈물이 났냐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데, '좋은'과는 자꾸 멀어지는 듯한 나의 현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남겨진 모습은 언제나 웃고 있고 즐겁기만 한데, 수면 아래 다 이야기할 수 없는 나의 시간은 언제나 웃고 즐거울 수만은 없었기에 먹먹해졌다. 언제부터 혼자만의 시간에 갈증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난 이 시간을 통해 가장 가까운 세상으로부터 의도적 단절을 선택하는 것인 듯싶다.
인생이 아이러니 한 건 가장 사랑하는 세상에 가장 큰 번뇌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그러려니 하는 게 삶의 지혜인 듯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내가 너무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일 테다. 손아귀의 힘을 풀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힘 빼기'는 성공을 위한 만고의 진리가 맞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진리는 원래 삶으로 대입시키기 어려운 법이니.
어느덧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왔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렇듯 지나온 시간은 그저 점 하나 찍은 듯 너무 짧다. 그럼에도 고마운 건 적어도 사진첩 속에는 수천 장의 행복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우리의 작은 세상도 불완전함을 전제하고 있다. 완전할 수 없기에 어쩌면 '좋은'과 멀어짐을 느끼는 마음이 사실 더 그리로 향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는 게 아닐까.
크리스마스 새벽, 마음속에 다짐해 본다. 내년엔 모든 게 더 나아지리라. 그리고 한 발짝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가리라.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아이의 안녕을 빌며.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