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 떠오르는 풍경이라...' '겨울 풍경이 뭐 다 매한가지 아닌가?'
매거진 주제로 던져진 글감이 난해하다. <이맘때쯤 떠오르는 풍경>에서 난해함의 순서로 나열해 보자면 1) 떠오르는, 2) 이맘때쯤, 3) 풍경이다. 언젠가부터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 게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 돼버렸다. 장기 기억력이 약해진 걸까. 아니면 인상적인 삶을 살지 못해서일까.
'기억' 저장 장고가 있다면 그 주변은 늘 안개가 자욱한 기분이다. 그리고 그 안개는 불안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안에 생각보다 불안이 짙게 깔려있음을 느꼈다. 삶을 뒤 흔들 그런 불안이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갈망이 충족되지 못함에서 기인한 답답함인 듯하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늘이지만 집에 있으면 내내 늘어질 태세임을 감지하고 집 근처 카페로 갔다. 10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잠깐이라도 걷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피곤해서 그런 건지 오늘따라 알듯 말듯한 답답함이 자꾸 거슬렸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연초의 긴장이 다시 풀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점이 딱 이맘때쯤이었다. 바짝 올렸던 텐션은 다시 내려가고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시작한 뜀박질은 이미 출발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기에 더 이상 누구의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함께 출발한 선수들이 있지만 어차피 각자의 레이스였기에 지금부터는 고독과 함께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삶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사람이 돼버렸다. 누군가는 흥분하고 열광하며 보내는 연말과 연초는 그저 매일 연속된 시간의 흐름을 편의상 구분 지어 놓은 것이라고 여겼다. 이루고 싶은 뚜렷한 무언가를 가지고 살지 않았기에 기대감도 없었다. 그냥 오늘 하루가 안전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기대감이 없으니 감흥도 없었다. 감흥이 없으니 기억 속에 남는 이맘때의 무엇하나 없는 게 이해가 간다.
늘 나를 괴롭히는 생각의 버튼이 있다. '저 사람은 1년 사이 이만큼 변했는데 나는 왜 제자리일까?'라는 생각. 이 생각의 뒤편엔 방법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자기비판이 깔려있다. 그리고 자기비판적 사고는 언제나 나를 무력감이 빠뜨렸다. 무력감이 학습되니 더 현실에서 눈을 돌려버렸다.
오늘도 역시 이 패턴이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했기에 마음 한 구석이 껄끄럽고 답답했던 것이다. 이제는 원인도 알고, 이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어떻게 될지도 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본다.
의지적으로 내가 잘 해내고 있음을 칭찬해 준다. 단 10분이라도 걷고, 단 1분이라도 집에서 운동을 해본다. 늘 해오던 루틴을 지켜가며 하나씩 해내는 기분에 집중한다. 멋진 변화를 이뤄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를 비판하기보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며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니 어디선가 다시 박수와 환호가 들려오는 듯하다.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집중해 보니 내 마음속에서였다. 어쩌면 그동안 기대감이 사라지고 감흥을 잃어버린 체 살아온 이유는 나의 삶을 세상에 맞추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기댄 삶은 계속 타인의 인정과 응원을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은 굳이 세상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내보일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면 되기에.
오늘 이후로 다시 오늘의 주제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이제는 좀 다른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카페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모습이 불안을 몸에 휘감고 내일을 고민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을 위로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1년 뒤 이맘때쯤 더 올릴 풍경이길 바라본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이맘때쯤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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