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아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아니야.” 37개월쯤 된 아이를 육아 중인 부모라면 대충 짐작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나의 아이는 두 가지 현실을 부정한다. 첫째,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는 것, 둘째,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것. 어쩌면 집을 나서 하루를 노동을 하며 보내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본능적 거부 반응을 가지나 보다. 참고로 여기서 ‘노동’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해 보았다. 아이에겐 어린이집에 가서 열심히 노는 게 주어진 역할이니.
집에서는 자기 세상이라 그런 걸까. 형제도 없으니 모든 게 자기 것이겠다, 원하면 유튜브도 신나게 볼 수 있겠다, 때 되면 밥이 나오고 간식이 나오니 이만하면 아이에겐 천국인지도 모르겠다. 뜬금없는 생각인데, 그러고 보면 우린 이미 태어났을 때 천국을 경험해 봤을지도.
아이의 현실부정과 아빠의 현실 자각 사이에는 언제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이불을 칭칭 둘러 감고 절대 눈을 뜨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아이에게 절대 화내거나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부드럽게 무장해제 시켜보겠다는 아빠의 의지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버린 힘겨루기 같다. 엄마가 있을 때야 판이 다르게 흘러가지만 아내가 출근하는 날이면 말 그대로 맨투맨 대결이니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돌아보면 10에 6번은 결국 힘으로 제압하는 듯하다. 급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래 이게 중요한 포인트다. 오늘 아침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변함없는 현실부정이 이어졌지만, 기다렸다. 옆에서 조곤조곤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 쭉쭉이 신공을 발휘해 웃으며 잠에서 깨우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 과제는 세수와 양치였다. 언젠가부터 아이의 입에서도 아침이 되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도 아침 양치를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지만 완강하게 거절하다 보니 일단 물로 헹구는 정도로 넘어갔다. 그걸 오늘 성공해 냈다! 어찌나 뿌듯한지.
먼저 화장실에 아이의 장난감을 가져다 놓았다. 공룡과 고양이. 오늘도 변함없이 거절하는 아이에게 공룡이 괴롭히니 어서 고양이를 구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어디?”라고 외치며 화장실로 가 세면대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떠들며 세수를 시키고 틈을 주지 않은 상태로 이빨을 닦여야 한다. 마치 보험상품 소개하는 텔레마케터처럼 생각할 틈을 주면 안 되는 게 포인트다!
다행히 오늘은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유혈사태라고 하니 말이 좀 심한가 싶지만 뭐 어디 한쪽이라도 성질을 내면 그게 결국 유혈사태 아닌가. 평화로운 아침이 얼마만인가 싶어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양치를 하고 나면 아이는 향기를 맡아보라고 입을 벌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흠~~~ 좋은 향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입 안에 비타민을 쏙 넣어주고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와 함께 맞닥뜨리는 시간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장담컨대 오늘과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이 소중하다. 오늘의 아이를 기억하고 아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행동인지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