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 With Why>라는 책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책이다. 살면서 많은 것들에 대해 이유를 묻는 행위는 사고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퍼스널 브랜딩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WHY에 대한 고찰은 성장을 위한 통증을 감내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나의 삶은 말 그대로 하루를 '왜?'로 시작하여 '왜?'로 채워가고 있다. 37개월 아들 덕분에.
부쩍 질문이 많아진 아들은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인다. 옷을 입을 때부터 '왜 입어?'로 시작해서,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가는 모든 과정에도 질문을 한다. 어떨 때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또 다른 때는 알면서 짓궂은 장난으로.
주변에 먼저 아이를 기른 친구들을 보며 소위 질문 지옥에 빠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그 일을 맞닥뜨리니 그저 재밌기만 하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엄청 귀찮을 줄 알았다.
아이의 질문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투성이다. 얼토당토않은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근데도 그 질문들에 나름의 설명을 해보려 나도 애를 쓴다. 어떨 때는 스스로 흡족할 답을 내어놓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했던 설명을 또 하고 또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근데 정말 어려운 순간에 봉착할 때도 많다. '와,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질문.
예를 들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에 대한 질문. 하늘에 노을이 지는 현상. 아빠는 왜 서서 소변을 보고 엄마는 앉아서 보는지. 물론 설명할 수는 있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겪는 요즘이다. 문득 선생님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내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에만 익숙한 체 살아왔구나 싶다. 아이뿐만 아니라 독자들이나 내 콘텐츠를 소비해 주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 낮에 친한 지인을 만나 나눴던 대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우리는 얼마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나의 글을, 콘텐츠를 바라봤을까? 여전히 잔뜩 힘이 들어가 마치 '내 얘기 좀 들어봐'라며 권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를 통해 오늘도 나를 바라보게 된다.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거실에서 엄마와 맘마를 먹으며 무수한 '왜~?'를 던지고 있는 아이 덕분에 질문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들아, 질문이 많아진 너의 삶을 환영한다!
너의 질문만큼 너의 세계가 확장될 것을 잘 알기에
부디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