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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Feb 03. 2024

야구는 9회 말 투아웃 축구는 90분부터

아시안컵이 한참인 요즘 다른 축구경기는 잘 안 봐도 국대 경기만큼은 챙겨보는 편이라 기대감을 가지고 조별리그부터 보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이렇게 답답한 경기가 계속될 줄이야. 


조별리그 내내 보인 수비 불안은 마치 90년대 한국 축구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남아있는 수비 불안은 한국 국가대표 팀에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래도 언제부턴가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는데.


경기를 지켜보는 마음도 이런데 하물며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풀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공을 돌리면서도 번번이 막히거나 실수가 발생할 때면 올라오는 짜증이 얼굴에 역력하다. 역습 상황에 골이라도 먹혀 이대로 경기가 끝나버릴 것 같은 분위기에선 더 일그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표팀은 현재 4강에 진출했다. 가히 놀랍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앞으로 결승까지 간다면 남은 경기는 두 경기. 아마 상대 팀은 동점 상황으로 90분이 흘러가는 걸 가장 두려워할 것 같다. 대한민국의 축구는 90분부터 시작되니까.


벌써 몇 경기째 90분 이후 추가시간 전력투구로 상대팀과의 승부를 무승부로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마지막 투지가 실로 대단하다. 마음이야 90분 안에 경기를 끝냈으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남은 추가시간에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거나 뒤집어 버리는 게 놀랍다.


흔히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을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의미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격려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이제 이 표현도 바뀔 때가 된 모양이다. 축구는 90분부터. 


보통 축구 경기는 전반 5분, 후반 끝나기 5분을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몸이 풀리기 전과 마음이 풀리는 시간이 가장 위험하기에. 이번 경기들을 통해 깨닫는다.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1분 사이에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카타르 아시안컵 8강 전인 대한민국 대 호주 전을 보며 보는 내내 연신 '답답하다'를 내뱉었던 나와는 달리 정작 선수들은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승패를 뒤집었다. 끝나기 10분 전부터 이미 마음을 내려놓고 TV를 끌까 말까 고민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이번 경기를 보며 근성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삶도 그러하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내가 마음을 저버리면 그게 끝인 것이다. 그러니 비록 현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소위 삼재와 같은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는 듯 보일지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에게도 만회할 수 있는 추가 시간이 주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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