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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로 출근했습니다

by 알레

내가 딱 싫어하는 3박자의 하루가 있다. 피곤하고 흐리며 스산한 날. 이런 날 유난히 행동력이 제로가 된다. 참 희한한데 매번 그렇다. 근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꼭 자정에 신나게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보았던 카타르 아시안컵 대한민국 대 요르단 4강전 같다. 이대로는 집에서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 손에 잡히는 책들과 노트북을 싸들고 무작정 스타벅스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로는 늘 이상적인 하루를 구상하지만 정말 책 제목처럼 집중력을 도둑맞아 오늘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길 벌써 1시간째. 근데 또 작가는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라 자기 합리화를 시전 중이다.


삶을 재정비하겠다고 이런저런 모임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선택한 게 불과 엊그제였는데 안도감이 사라진듯한 이 기분은 또 뭘까. 오늘 읽은 뉴스레터에 적혀있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나무라는 사회에서 자랐기에 재충전을 위한 쉬어가는 시간마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고. 지금 딱 내가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돼버렸다. 물론 덕분에 꾸준함이 생겼고 성장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평판도 얻게 되었지만 정작 내가 나를 옥죄는 버릇이 생겨버렸으니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스타벅스는 참 좋은 대안이다. 일하는 사람, 대화를 나누는 사람, 혼자 조용히 책 보는 사람, 식후에 커피를 사러 왔다 간 한 무리의 직장인들까지 참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날 수 있다.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삶을 관망하듯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적당히 위안이 되면서 동시에 자극도 된다.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나도 그런 사람처럼 느껴지고, 차분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내 마음도 잔잔해진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에 나도 얼른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즐거운 만담 중인 어머니들을 보면 괜스레 친구들이 생각나 메시지를 건네보기도 한다.


딱 오늘 같은 날, 스타벅스에 앉아있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채워지고 해소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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