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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삶을 다시 꿈꿔 봅니다

by 알레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은 다 꿈에서 시작한단다.
그러니까 꿈을 잃지 마.


영화 <웡카>에 나오는 한 마디. 사실 이런 유의 영화가 다 그렇듯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슴 깊이 뭉클함을 느끼는 건 '꿈'이라는 단어가 자아내는 감정인 듯싶다. 꿈을 꾼다는 건,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무엇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현실을 산다는 것은 가장 현명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모든 행동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지극히 마땅했다. 글을 쓰는 것 마저도.


어른이 되어가면서 꿈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말도 안 되는, 얼토당토않은, 허황된'이라는 수식어로 몽상과 망상 사이를 오가게 된 꿈은 오래전에는 다른 말들로 꾸며졌었다. '신박한, 영특한, 창의적인'과 같은 수식어와 함께 언제든 다 이뤄질 것이라는 든든한 지지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냥 내 아이를 대하는 나를 보며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을 거라 상상해 본다.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나니 알게 된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 도 다 꿈에서 시작한다는 걸. 나쁜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배려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꿈에 의해. 문득 현실을 알아버리는 건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아니다. 어쩌면 현실을 아는 건 축복도 저주도 아닌지도 모르겠다. 알아버린 현실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꿈꿀 수 있게 해 주는 건 축복일 거고 꿈을 앗아가는 게 저주이겠다.


물론 세상이 동화와 다르다는 것쯤은 잘 안다. 알기에 동화 같은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게 현실이었으면 꿈꿀 이유가 없을 테니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 한들 제도권 안에서는 결국 꿈꾸는 방법을 잃어버리는 게 현실이기에. 적어도 한껏 박수받을 수 있는 시기만이라도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격한 환대를 해주는 문화센터의 수업처럼. 내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걸 매일 느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용납해 주는 그 시절이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응원해 줘야겠다. 그리고 내가 꿈꾸기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세상은 욕심쟁이가 가난한 사람을 이기는 게 순리라고 이야기하는 소녀에게 세상을 바꾸겠노라 답하는 웡카처럼 모두의 삶에 달콤한 희망을 움트게 할 재주는 없지만, 적어도 나의 글이 닿는 누군가라면 40대지만 꿈같은 소리를 하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 만으로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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