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승. 전. 사장님 때문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습니다.

by 알레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좋은 리더란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사람이 좋은 리더일까?
좋은 리더는 좋은 사람이어야만 할까?


9년 동안의 짧지 않은 직장생활을 경험해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실력보다 눈치로 올라간 사람, 실력은 좋지만 인성은 바닥인 사람, 사람은 좋은데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 인성도 실력도 바닥인 사람. 유형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직장이겠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또는 망설이지 않고 같이 질러대는 경우도 생긴다. 나름 맷집이 생겼다는 것을 반증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좋은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정답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또 어떤 누군가의 저서를 소개하거나 학문적 발언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의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적어보게 되었다.




해고 통보


첫 직장의 대표이사님은 그야말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셨다. 힘찬 발걸음으로 등장한 그분은 언제나 재빠르게 사무실을 통과해 사장실로 들어가셨다. 어지간해서는 사장님을 만날 일이 없던 그 시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당시 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던 부장님이 계셨다. 제조업 기반의 회사에서 연구소면 나름 끗발이 남다른 부서라고 할 수 있다. 핵심 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인 만큼 비교적 독립적이면서 또 상대적으로 관심도 지대했다.


수습을 마친 후 공장에서 현장 근무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어느 날 소장님께서 서울로 근무지가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진했던 나는 그저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있어 몇 번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인사드리곤 했던 소장님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대표이사님께서 소장님을 서울로 올라오게 하신 것도 어찌 보면 연구소 일에서 손을 떼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대표님은 딱 한 마디를 하셨다고 들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대표로서의 결단력을 행사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소의 소장을 그렇게 내치는 건 남아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어마어마하다는 후폭풍이 남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원만하게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사기, 의욕(MORALE)


1년에 한 번은 전 직원이 공장에 모여서 다 같이 워크숍을 했다. 형식적인 영업팀의 발표가 이어지고, 생산부서, 품질부서, 그리고 연구개발 부서 차례로 준비한 발표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극기훈련이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조를 나눴다. 그리고 제한 시간 안에 구호와 동작을 만들고 발표를 시작했다. 예상했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마치 군대 유격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정도의 악을 질렀다.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퇴사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누구, 또 여긴 어디...'


그래,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냥 남자들만 가득한 회사인 만큼 군대문화가 자연스러울 수는 있다. 그런데 충격이었던 것은 이어지는 야간 행군이었다.


'와, 이건 아니지!!!'


그런데 어쩌겠나.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신입사원이 무슨 힘이 있겠냔 말이다. 그저 걷고 산에 오르고 다시 걸을 뿐이다.


도대체 왜 주먹을 불끈 쥔 채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구호를 외치고 야간 행군을 해야만 직원들의 사기가 오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부드러운 리더십? No Way!


현 직장의 대표님의 성향은 첫 번째 직장과는 완전 정반대다.

카리스마 제로. 결정 장애. 딱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사무실 근무 인원이 10명 남짓 되는 규모의 회사다 보니 사장님의 성향이 조직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진 대표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면 지금의 대표님은 오히려 부드러운 편이다. 그래서 직원들이 더 편하게 다가가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간혹 공사 구분 없는 두루뭉술한 경영방식에 직원들은 '우리가 직원으로 채용이 된 건지 아니면 몸종으로 채용이 된 건지 싶다'는 속내를 나누기도 할 만큼 사적인 일도 서슴지 않고 직원들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언제나 당사자의 면전에서는 아무 말 없다가 정작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없던 카리스마를 끌어올리신다는 것이다.


대체 저희가 왜 관련 없는 일에 대한 짜증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저희는 사장님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고요!


이 뿐만 아니라 거래처와의 관계에서도 영업사원과 혼선을 빚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시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실 것처럼 말씀하신 후 돌아서서 담당자에게는 다른 소리를 하시기 일쑤다.


결국 회사에 모든 혼선의 원인 제공자는 “기. 승. 전. 사장님”이시다.




모두 다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하는 소리이긴 하지만 결국 직원의 입장에서는 사장님의 성향이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참 절대적이다. 직원들도 얕게 구는 부분이 분명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이 '그저 월급 주니까 당연한 것'으로 치부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장님과 직원들 사이에는 언제나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이 존재한다. '직원들이 먼저 실력을 보이면 응당 보상을 하겠다는 대표님 vs. 먼저 보상을 제시하면 그에 맞는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직원들'의 싸움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줄다리기는 늘 계속된다.


솔직히 첫 회사의 대표님은 따지고 보면 그분 역시 고용된 상태이니 뭔가 자유롭지 않을 수밖에 없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직장의 사장님은 오너이자 대표이사인 만큼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도 있을 텐데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급여 인상도, 복지 혜택도 어떤 것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그저 바라는 것은, 제발! 기. 승. 전 사장님 짓좀 그만하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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