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쩌면 이 붙는 재능들이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있고 누군가의 글을 읽고 되짚어 주는 피드백도 있다. 솔직한 말로 무엇 하나도 어쩌면을 지우고 자신 있게 내세우지는 못한다. 언젠간 그 어쩌면을 지우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에너지를 몰빵 하게 된다.
나는 누구 보다 나를 설득시키기 위해 꾸준해진 사람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에서 이제는 100걸음 물러섰다고 생각하기에 완벽주의 성향에 대해선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익숙함과 유연함의 측면에선 여전히 목표지점이 높다. 그래서 매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래도 전과 확연히 달라진 건 '제가 뭐라고...'에서 '그럼 제가 한 번...'까지 도달했다. 꽤나 설득이 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천성이 그런 사람인 듯하다. 나서기보단 한 발 물러서는 사람. 근데 또 하게 되면 어떻게든 하는 사람. 이게 이렇게 피곤한 삶이었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생각을 개조해서라도 들이대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한 발이 반 보가 되고 반의 반이 되기 위해 나를 끌어당길 뿐이다.
'글을 쓰다 보면 대체 뭐가 나아지는 걸까?' 숱하게 생각했다. 흔히들 뇌가 확장된다고 하는데, '대체 뇌가 확장된다는 표현의 뜻이 뭔데?' '아니면 느낌이라도 뭐가 달라지는 건데?'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 뇌의 확장을 너무 공공연히 말하는 게 짜증 난 적도 많았다. 하기사, 뇌과학 분야의 책을 읽지 않은 탓에 모르는 건지도.
최근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중 유난히 문장이 쏙쏙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데 마치 머릿속에서 뭔가 뒤섞여 글로 재구성되는 느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이런 건가?' 싶었다. 중요한 건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읽고 쓰는 건 100세 시대에 건강 관리를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AI가 삶의 편리를 높여줄 거라 해도 사고할 줄 모르면 오히려 도태된다고 믿는다. 항상 제일 끝단에서 편리만을 제공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읽고 쓰는 삶을 주장하게 된다.
매일 쓰기를 이어가니 어떤 날은 쓰기에 목마르고 또 다른 날은 읽기에 갈증을 느낀다. 먹고 싸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듯 읽고 쓰는 것 또한 한 세트 일수밖에 없다.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가장 좋은 건 한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또 쓸거리가 생기고. 쓰다가 막히면 또 읽는다.
어떤 날은 하루를 마감하는 글에서, 또 어떨 때는 댓글에 살을 붙여 한 편의 글을 쓴다. 생각해 보니 나에겐 다양한 공간에 메모장이 존재하는 셈이다.
글쓰기 모임도 '어쩌면'으로 시작된 모임이었다. '어쩌면'이 '이제는'으로 바뀌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나에겐 남들보다 더 용량이 큰 모래시계가 존재하나 보다. 항상 어느 정도 이상의 시간은 필연적이다. 빠름과는 거리가 있지만 덕분에 꾸준함이 삶에 배었다.
또 새롭게 적용해 보는 것에는 얼마 동안 '어쩌면'이 붙어 있으려나. 그렇지만 시도하는 게 어딘가. 나만의 속도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가속이 붙는 날이 오겠거니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