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은 쓰고 있는데, 어쩐지 모를 이 정체감. 어떡하지?’
처음 글을 쓸 땐 습관 만들기에 힘썼다. 그땐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지금은 성에 차지 않는다. 매일 글쓰기도 100일째를 넘어서니 숨을 쉬듯 써 내려가는 건 말 그대로 숨쉬기 운동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여전히 매일 글감을 찾아내기 위해 쉼 없이 머리를 굴리는 건 여전 하지만 그래도 3년 전만큼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은 낮아진 지 오래다. 그보단 매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기분에 오히려 정체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시기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
‘정체기’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10의 힘을 주어야 했던 것들이 이제는 3 정도면 충분할 만큼 편안해진 상태다. ‘익숙함’은 곧 ‘가뿐함’이다. 바벨 운동으로 치면 더 이상 50kg에서 중량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소리다. 즉, 그만큼 근육이 발달했음을 의미한다.
자극 추구는 성장형 인간의 본능이다. 자극 중독은 조절해야 할 부분이지만 추구하는 건 성장을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정체감을 느낀다면 한 단계 높은 자극을 추구할 때가 온 것이다. 50kg에 양쪽 10kg 원반을 더해 70kg으로 올려보는 것. 어금니를 꽉 깨물고 호흡을 꽉 잡아준 상태로 한 번, 두 번 겨우 올리는 그 단계로.
양적 글쓰기에 치중한 시간아 3년이다. 이젠 양질 전환을 위한 기로에 섰음을 깨닫는다. 중량을 올리듯 글쓰기는 책 쓰기로, 문어발식 글쓰기에서 기획 글쓰기로, 칼럼 기고, 익숙하지 않은 플랫폼 글쓰기, 글쓰기 강의 등 기준을 높여보는 것이다.
‘정체기‘의 또 다른 의미는 그릇이 커졌다는 것이다. 상류의 물줄기는 유속이 빠르고 에너지는 강하지만 좁고 얕다. 거센 물줄기도 넓은 강물에 합류하면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잔잔해진다. 그러나 담아낼 수 있는 양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정체기에 변화의 강도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건 그만큼 나의 깊이와 너비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만큼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어떤 해석이든 정체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난이도를 높이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정체기가 길게 느껴진다는 건 나의 레벨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기에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마추어 세계에서 상급으로 도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프로의 세계로 건너가야만 하는 단계일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정체감'은 지금의 나에게 던져진 숙제다. 0에서 80 계단 까지는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80 계단에서 이후 19 계단은 각각의 높이가 다르다. 어찌 어지 99 계단까지 올랐다 해도 마지막 1계다는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사실 80 계단을 오른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잘했다고 자신을 격려해 줄만 하다. 그러나 어차피 회사 밖의 길을 택했다면 적어도 99 계단 까지는 목표로 하고 가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한 계단 오를 차례다. 얼마나 높을지 부딪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올라서기로 마음먹었기에 이제부터 다시 온 힘을 다해볼 것이다. 여태 올라가 보지 않았던 다음 스텝으로.
가고 서는 건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정체기를 지나고 있다면 '현재'에서 '다음'을 향해 나아가라는 강력한 신호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