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갔다. 막 잠에서 깬 찌뿌둥한 몸과 풀리지 않아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거실 매트 위에 다시 드러누웠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불청객이 찾아온다. 마치 얼음이 녹아내리듯 통제되지 않는 콧물이 주룩 미끄러 내린다. 훌쩍, 스읍- 또 훌쩍. 비염은 대체 왜 생긴 거며 왜 어김없이 찾아오는 걸까. 가을은 나의 최애 계절이지만 비염은 너무 싫다.
안타까운 건 내 아이도 비염을 달고 산다. 다른 좋은 것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비염을 타고났단 말인가. 애석하지만 어쩔 수도 없으니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를 데리고 주에 한 번은 병원에 간다. 매일 콧물 약을 먹어야만 하는 일상. 우리의 가을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좀 낫다. 얇은 남방이나 가벼운 긴팔옷을 입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면 그래도 한결 낫긴 하지만 아직은 온도가 애매해서 반팔차림으로 생활한다. 그래서일까. 아주 살짝이라도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면 멀쩡하던 코가 먼저 ‘찡-’한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목구멍을 긁어주는 재채기가 시작된다. 연달아 터져 나오는 재채기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옆에 있던 아내가 인상을 찌푸린다.
경험상 비염은 컨디션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유달리 피곤한 날이면 더 심해진다. 이런 날엔 각오를 해야 한다. 두통이 올만큼 재채기가 멈추지 않으니.
알러지약을 늘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인생은 참 고달프다. 약에도 점점 내성이 생기는지 어느 때부터는 약이 듣질 않는다. 약국약은 물론 이제 병원 처방약도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다. 졸리기만 졸리고 내내 훌쩍거리는 걸 보니. 하도 코를 풀어댔더니 코가 땡땡 붓는 기분이다. 이러다 내 코가 정말로 석자가 돼버릴 것 같다.
제 아무리 비염이라 해도 가을바람을 꺾을 수 있을까. 아! 솔솔 부는 바람이 아니라 놀고 싶은 마음 말이다.
요즘 우린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랑 열심히 나들이 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종일 쓰고 있는 마스크로 귀가 파이는듯한 고통이 느껴져도, 약기운에 졸음이 밀려와도, 연신 코를 훌쩍여 들이마신 코 덕분에 허기짐을 잊아버릴 지경이 되어도, 가을바람은 마음을 들쑤신다.
가을이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대체 누가 말한 걸까. 아무래도 들뜬 마음을 일부러 가라앉히려는 큰 그림이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