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는 어떤 사람인가?'
책을 읽던 중 질문이 떠올랐다. 생각나는 대로 키워드를 적어 보았다.
4세 아들을 기르는 육아아빠 애데렐라, 40대, 퇴사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백수. 3년 동안 방황과 좌절을 경험하며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사람, 생각이 많아 행동이 빠르지 않음. 그 와중에 호기심도 많아 이것저것 찍먹 해 본 경험도 많음. 글을 쓰고, 음악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사진 찍는 걸 좋아함. 내면의 성찰과 성장에 관심이 많음.
써놓고 보니 대략 이런 캐릭터가 '알레'라는 사람이겠구나 싶다. 정말 지난 3년을 보내며 나의 무능함에 무기력감을 느낀 날들이 많았고, 끝도 없는 비교를 해대며 내가 나를 상처 준 날들도 많았다. 방향을 모른 채 순간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넘어서기 위해 강의도 들어보고 모임에도 나가보았으며 다양한 분야의 책도 구입했다. 이 모든 행동들이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미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 뒤였으니까.
그래도 3년의 방황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글쓰기에 치열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또 그 덕분에 급물살 같아 그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방황의 물살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어 나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껏 글을 쓰는 시간은 마음의 소란을 잠재워주는 시간이었다. 방향을 몰라 제자리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갈피를 잡아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한 발 물러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내시경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만화경으로 바라보는 다채로운 문양처럼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생각을 바라보게 해 준다.
글을 쓰며 한 가지 재능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꾸준함.' 나의 글쓰기는 꾸준함의 결과이며 상징이다. 시간의 축적만큼 꾸준함의 확증이 되어주는 것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3년 전부터 멈추지 않는 글쓰기는 가장 내세울 수 있는 확증이다.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그 많은 모임과 무엇으로 차별화를 할까 고민했다. 나는 대단한 출간 작가도 아니고 강연가나 강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플루언서도 아니기에 대체 무엇으로 다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같이 쓰는 것. 다정한 관계를 맺는 것.
모임을 운영하기 전 참여했던 대부분의 챌린지 모임에서 운영자는 운영만 하는 게 전부였다. 실제 프로그램을 함께 소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작가님들과 함께 인증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올리고 매일 인증하기로 했다.
주중 5일간 4주를 꼬박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렵고 불편한 행동을 해야 할 땐 동료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는 진짜 동료가 되고 싶었다. 그저 판깔아주고 시스템 에러나 손봐주는 운영자 말고. 그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다름이었고 최선의 다정함이었다.
어느덧 2년이 흘렀다. 3년의 꾸준함에 글쓰기 모임 2년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덕분에 바쁜 일상 가운데에도 자발적으로 글쓰기에 시간을 쓰는 동료 작가님들을 얻었다. 변함없이 모임에 함께 해주는 작가님들 덕분에 나는 지금도 계속 쓸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껏 무엇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호기심이 많아 이쪽저쪽 기웃거리다 보니 끈덕지게 하는 게 없었던 탓이다. 이런 성향이 글쓰기를 만나고 오히려 날개를 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삶에 대한 방황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글을 쓰며 제멋대로 날뛰는 야생마 같던 생각은 이제 제법 정갈해졌다. 글쓰기는 나에겐 삶이다. 내가 나눌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면 나는 나와 같은 방황과 좌절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는 육아 중인 엄마 아빠들에게, 30대-40대에게, 글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계속 글을 쓰게 된다.
*삶의 방향을 찾고 싶다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길 원한다면, 매일 글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그리고 글쓰기에 진심인 동료들을 얻고 싶다면,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몹쓸 글쓰기) 9기에 초대합니다.
(몹글 9기는 마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