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 중 별안간 소란이 벌어졌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와, 살다 살다 계엄령 선포를 보게 될 줄이야.' 이게 뭔가 싶어 TV 뉴스와 함께 유튜브로 전해지는 다수의 생중계 화면을 열었다. 경찰 병력이 국회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이 국회 본관 앞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튜브 실시간 댓글 창엔 도심 한복판을 지나는 탱크를 목격했다거나 장갑차를 봤다는 말들이 난무했다. '설마, 아니겠지'했는데 실시간 중계 화면 너머로 헬기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난입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몇 차례의 몸싸움이 있었지만 진입을 저지하려는 쪽의 저항에 잠시 물러서는가 싶더니 깨진 유리창을 통해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본회의장을 향하는 저들과의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상황은 가까스로 종료되었다. 촌각을 다투어 국회로 모인 의원 190명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가결로 새벽 2시 35분 상황은 일단락 지어졌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암담하고 참담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시상황도 아닌, 일반 시민의 눈에 비치는 건 그저 정치적 보복에 불과한 말도 안 되는 계엄령 선포라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젊음을 바쳐 독재로부터 지켜낸 나라이고, 반도의 작은 국가지만 K-CULTURE라는 장르를 만들어 낼 만큼 문화 강국이 된 나라이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나라이기도 한, 그리고 내 아이에게 그런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은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는 한 사람의 독단이 비극이자 희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겨우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일상을 시작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오늘따라 올려다본 하늘이 유달리 파랗다. 겨울바람이 밤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거리엔 지난 폭설로 부러져 위태위태 걸쳐있던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아저씨들과 이른 아침 낙엽을 정리하는 어르신들이 분주할 뿐이다. 정말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싶을 만큼 일상은 고요하다.
'일상, 그렇지. 우리는 또 일상을 살아야만 하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늘 해오던 것을 시작해 본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싱숭생숭하다. 평소라면 집으로 돌아갔을 시간에 짐을 싸들고 카페로 향했다. 이러다 글도 쓰지 못하겠다 싶어 그냥 나왔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해가 저무는 시간 아침보다 더 쌀쌀함을 느낀다.
카페에 도착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달달한 음료까지 한 잔 마시니 이제야 진짜 평소로 돌아온 것 같았다.
유튜브에는 지금도 계속 후속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음악을 틀었다. 평소처럼.
오늘따라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거리의 보도블록과 카페 안에 있는 진열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이 그리고 그런 것들이 뭉뚱그려 흘러갔던 평소가 이렇게나 소중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일상의 소중함이야 진즉 간직하고 살아왔지만 이번만큼 더 실감 나게 다가온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다행인 건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소란으로부터, 그 소란이 만들어내는 잡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기에 밤새 내린 눈처럼 마음에 쌓인 암담함을 금세 녹여버렸다.
되새기고 싶진 않지만, 짧게나마 글에 남기는 건 그럼에도 잊고 싶지는 않아서다. 나의 평소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에. 내 아이의 살아갈 날을 지켜주고 싶기에. 오늘을 글 속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