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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Feb 13. 2022

퇴사 후 3개월이 지났다

- 낙담의 골짜기를 지날 지라도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마음 가볍게. 사뿐사뿐 걸으며 회사 문을 나선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퇴사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안한 건 또 불안한 거니까. 불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 글을 쓰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제 멋대로 커지기 마련인데 글로 박제시켜버리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난 오늘 글을 써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생산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지금 나의 레벨에서는 논외의 요소다. 그저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시간이 좋다. 좋아서 하는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최근 들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생각해보니 생산하는 시간보다 소비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필연적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웃풋에 대한 갈망만큼 더 많은 인풋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내 머리로 쥐어 짜내기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고, 누군가로부터 영감을 얻어 살을 붙여 겨우 만들어 내는 수준이니 인풋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계속 소비하는 시간만 가지다 보니 정작 내 콘텐츠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제조업 기반의 회사를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백날 경쟁사 제품을 분석만 하고 있어 봐야 직접 제품을 만들어 보기 전까지는 온갖 추측만 돌고 돌았던 기억이 난다. 개발팀에서 모형이라도 만들어 놔야 그때부터 진짜 우리 제품을 만들기 위한 박터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퇴사 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메신저가 되는 것이었다. 살아가고 싶은 방식은 여전히 노매드적인 삶의 형태다. 그래서 계속 내가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참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 이제 마음이 좀 처지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의심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낙담의 골짜기. 요즘 이 표현을 참 많이 내뱉는 것 같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가 사용한 표현이다. 한 사람의 습관 형성, 성장은 자신의 기대처럼 우상향 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J커브를 그리듯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 시기를 낙담의 골짜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시기에 접어들면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하니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피해 가고 싶은 그 골짜기로 접어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방향을 찾은 듯하다가도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손에 잡히는 듯하다가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잡은 것 마냥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면 힘이 빠진다.


육아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설상가상 시간도 체력도 여유롭지 않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쏟아내고 나면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이 버거워 쓰는 것을 접어버릴 때도 많았다. 


그래도 생각이 떠오를 때면 꾸역꾸역 메모장에 적어두기라도 한다. 혹여 쓰는 시간이 확보되면 무엇이든 꺼내 쓸 수 있을 준비라도 해놓지 않으면 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그렇다고 또 마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허송세월 한 것은 아니다. 그 사이 블로그에, 인스타에 매일 뭐라도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감은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긴 하다.






오랜만에 속이 후련하다. 주절 거리는 입술의 리듬에 따라 휘갈겨 쓰는 시간은 그저 즐겁다.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다. 글 쓰는 것도 에너지를 쏟아내는 행위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마 나에게는 성취감이 큰 행동 이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퇴사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삶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고민도 많다. 감정의 기복도 더 심해졌다. 이제는 회사라는 빌런도 없으니 괜스레 화풀이할 대상도 없다. 오롯이 내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지금 낙담의 골짜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과정은 고달파도 생각을 바꿔보면 더 큰 성장을 위한 에너지를 응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움푹 파인 골짜기에 앞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달려 나갈 힘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계속 나의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한다. 매일 나 자신과 대화한다. 나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뾰족한 답이 나올 때까지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메신저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필요할 때 나의 메시지를 통해 적어도 갈피는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지금 나에게 낙담의 골짜기는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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