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 내공은 잘 읽는 것부터 시작된다.
브런치 작가 심사에 통과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개월 된 것 같다. 그 사이 나름 브런치 메인뿐만 아니라 다음 메인에 올라가면서 조회수가 터지는 글도 있었다. 힘을 빼고 쓴 글 들이 터지는 것을 보면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성숙한 문장력보다 때로는 초보 작가의 날 것 같은 설익음이 더 빠른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순간 떠오른 글감을 잡고 마치 성난 파도처럼 백지 위에서 휘몰아치듯 써 내려간 글에 배어 있는 감정선을 따라 누군가는 그 요동치는 감정을 함께 태워버리기도 한다. 처음 이런 경험을 할 때면 짜릿하다. 글쓰기가 마치 숨겨진 나의 재능인 듯 보이기도 한다.
가볍게 글을 쓰는 것은 초반의 글쓰기 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매번 글쓰기가 버거운 도전으로 다가오면 즐거움을 결코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가볍게 쓰기'만을 이어가다 보니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함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Venezuela's Resource Curse and Economic Growth in Chavez Regime
총 70페이지 영문 글. 50개의 레퍼런스. 그 외 각종 웹사이트 자료들. 그리고 약 1년 반의 기간.
개인적으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잠시 소환해 보았다. 석사과정 내가 쓴 논문의 제목과 참고 자료의 숫자, 그리고 논문 작성 기간이다.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며 이후로 다시는 글 쓰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마음먹고 살았다.
그때는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 책 출간의 과정을 한 번 겪어본 셈 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논문을 쓰는 것과 책 출간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본질적으로 다양한 인풋 가운데 나의 주제를 발견하고 해당 주제를 분석하기 위한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과정은 논문이나 책 쓰기나 닮아 보인다.
내가 출간 작가는 아니니 일정 부분 추측이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글쓰기에 대해 출간하신 작가님들의 콘텐츠를 보면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풋 -> 레퍼런스 수집 -> 초고 작성 -> 피드백 -> 퇴고, 퇴고, 퇴고,,, -> 완성 글 발행
논문이든 에세이든, 브런치 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한 글이든 적어도 한 편의 완성 글을 발행하기까지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 같다. 이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래 보인다. 그저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위의 과정을 통해 지난 나의 글을 떠올려 보았다. 갑자기 낯이 뜨겁다. 나는 누구보다 글을 가볍게 쓰는 편이다. 순간 떠오른 생각으로 후루룩 써 내려갈 때도 있다. 이것도 능력이면 능력이겠지만 중요한 건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름의 인사이트가 있길 바랬다. 솔직히 고백하면 꾸준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떤 제안을 받기를 희망했다. 고백하고 나니 더욱 민망해진다.
나의 글쓰기에는 위의 과정 중에 생략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거쳐가는 과정도 매우 얕거나 그저 뇌피셜에 불과한 것들도 존재한다. 나의 글쓰기 수준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갑자기 한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한 말이 떠오른다.
"무자본 창업을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분야를 특정했다면 해당 분야에 관련된 책을 대략 스무 권 정도 읽어보면 된다. 그러고 나서 꾸준히 기록을 남겨 전문성을 쌓아 나가라."
대략이지만 어쨌든 적어도 스무 권이다. 즉 다시 말하면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쌓는 시간(인풋)은 필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이동영 작가님의 콘텐츠를 보다가 말 그대로 혼쭐이 났다. 책 쓰기의 7단계 중 첫 번째, 인풋을 쌓는 단계에 대한 글에서 '읽지도 않고, 경험하기도 꺼려하고, 메모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타인에게 공감도 못하고, 질문조차 없는 것'에 대해 말 그대로 팩폭을 날리고 있었다.
작가님이 말하고 있는 첫 번째 단계조차 제대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있으면서 그저 어쭙잖은 조회수 경험 가지고 막연한 생각만으로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그저 부끄럽다.
그냥 일기 쓰는 것 말고, 이미 유명해진 인플루언서들을 제외하고, 소위 팔리는 글을 쓰고 싶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면 인풋을 쌓는 단계는 필수이다. 무엇이 되었든 일정 시간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내공이 되지 않는다.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라는 말이 나에게는 참 고무적이었다. '초보', '왕초보'. 표현만 보면 참 쉽게 이루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이 말에 현혹되어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간 그저 뼈아픈 시행착오만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N 잡러, 수익 파이프 라인, 경제적 자유, 돈이 열리는 나무, 추월차선'
회사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표현들이다. 그리고 꿈꾸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나 역시 퇴사할 무렵 그 꿈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결국 이런 삶을 이루기 위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만큼 전문성을 길러야 하는데?'라고 묻고 싶다면, '누군가가 나의 콘텐츠를 비용을 치르고 구매할 만큼'이라고 밖에 답하지 못하겠다. 나도 여전히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하니까.
인생살이와 글쓰기의 원리가 참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채워 넣지 않으면 나올 것도 없다는 것이 말이다.
보이는 결과물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도 그렇다.
물 밑에서는 엄청난 시간의 에너지가 축적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결국 글쓰기 내공은 잘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