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이 많을 때는 글로 풀어냅니다.
삶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관성을 가지고 있어 쉽사리 방향 선회가 되지 않는다.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의 머리 크기는 다 고만고만한데 생각은 왜 그리 가득 들어 차있는 것일까. 머리 크기만 보면 들어갈 것도 많지 않은데 생각은 끝이 없이 커져만 간다.
요즘 나의 삶의 전반적인 흐름은 효율보다는 비효율의 반복이다. 생산적이기보다는 비생산적 흐름은 여전히 관성을 가지고 있어 나를 괴롭힌다.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어떤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의 공통점은 집중력을 요한다. 그리고 집중을 위한 임계점에 접어들기까지 그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 딱히 집을 나설 일이 없는 요즘, 육아와 자기 계발, 그리고 나의 콘텐츠를 찾기 위한 고민의 시간은 모두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 경계가 모호하니 임계점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금은 경계를 두고자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집중의 시간을 갖기 위해 미라클 모닝을 실천 중이다. 아침 시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피로도 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전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는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히 끝내 놓아야 하고 아이도 일찍 재워야 한다. 오후 내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침 시간에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내야만 한다. 잠에서 깨어 몸이 풀리기까지의 시간을 감안해볼 때 오전 시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미라클 모닝이 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지내다 보니 어느 하나의 톱니바퀴가 어긋나면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버린다. 흐름이 깨어지는 순간 어떤 구간에서든 오버페이스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제법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가끔 유난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 있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린다. 그럴 때면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정작 머리가 간지러운 것은 아닌데 자꾸 손이 간다. 뇌가 간지러운 기분이다. 생각이 많아질 때는 뇌를 시원하게 긁어주고 싶다. 손이 닿을 수만 있다면 잡념이라는 덩어리를 끄집어내고 싶다.
사람들 말처럼 이럴 땐 밖에 나가 무조건 걸어야 할까. 콧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조금은 나아지려나 생각하는데 그것도 귀찮다. 아니 솔직히 그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잠든 시간이 잠깐이라도 내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시간의 득실에 대한 셈을 하게 된다.
그나마 찾은 방법은 뇌가 간지러울 땐 글을 쓰면 좀 낫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모순적인 듯하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생각이 많아 뇌가 간지러워 괴롭다고 하면서 글 쓰기가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마치 중량 운동을 하고 나서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을 때 다시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처럼 생각이 가득 들어찼을 때는 글을 쓰는 것은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을 한 군데로 몰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 뇌를 쥐어짜니 어쩌면 이 과정이야 말로 뇌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작업이지 않을까.
복잡하고 괴로운 마음에 시작하였지만 나의 인생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첫 문장도 쓰기 어려워 일정하게 움직이는 시계 초침처럼 흰 화면 위에 깜빡 거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지만 글을 쓰는 이 공간은 나만의 우주가 된다. 마치 창세기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성경 구절처럼 나의 세계를 창조는 창조주가 된다.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때가 글을 쓸 때이다.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하다못해 일기라도 쓰지 않으면 이제는 그게 더 괴로움의 가시가 되어 나를 콕콕 찔러댄다. 이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글을 쓰게 되니 당분간은 이렇게라도 조금은 생산적인 삶을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