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리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첫 여행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난 사실 그냥 그랬다. 사람들이 환장하는 해외여행이라는 게 이런 건가..? (지금은 나도 여행 가는걸 너무 좋아하는 편이다.) 음식도 잘 안 맞았던 것이 난 햄버거, 피자, 빵, 와플 등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원래 잘 먹었던 음식인데 하도 먹어서 한국에 와서도 잘 안 먹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김치를 찾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어른들이나 컵라면 싸가고 김치 싸가는 줄 알았지. 그러다가 또, 뉴욕에는 온갖 나라의 요리가 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물이 당겨서 한식이 없으면 아시안 음식으로 가자..!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난 뉴욕에서 타이 음식도 먹어보았고, 카레도 먹고, 일본 라멘도 먹고, 할랄 푸드도 먹었다. (굳이 뉴욕 가서 다른 나라 음식만 신나게 먹다가 왔다.)
이래저래 목숨을 부지한 채로, 난 JFK공항으로 돌아갔다. 이제야 집에 가는구나. 오히려 후련한 이 마음은 뭐였을까.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긴 기분이었다. 타지 생활은 나와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뒤로한 채, 수속을 밟고 플랫폼에 가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난 japan 에어라인으로 일본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는데 주변에는 몇몇의 한국인이 보였다. 그러나 굳이 서로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으니 각자 핸드폰을 하거나 자신의 친구들,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한국 분이 소리쳤다. '엇! 짐 뺀다! 결항인가 봐요!' 그렇게 나는 첫 해외여행에서 비행기가 결항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유명한 한국인의 특성 일화 중에 이런 비슷한 얘기가 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공감되던지..) 한국인 외의 일본인들은 다들 침착했다. 안내 방송이 들리기 전까지 일본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좀 전까지는 서로를 무시하더니 갑자기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한국분들 계세요?!'라는 외침에 나도 그 무리에 자연스럽게 껴들어갔다.
일본인 기장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 해결을 해주겠다고 말하자, 한 부자같이 보이는 아주머니는 마일리지로 바로 다른 비행기를 타겠다며 홀연히 사라지셨다. 결항기 문제로 무리를 짓게 된 한국인 부랑자들은 일본인들보다 더 빠르게 뛰어가서는 줄을 섰다. 하지만 줄이 줄어든다거나 하는 변화는 없었다. 애초에 그냥 기다리기 위한 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몇몇 한국인 부랑자들이 지인이 JFK 공항에 일을 한다며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도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부랑자들은 나를 빼놓고, 기다랗게 늘어선 줄도 무시한 채로 기장에게 직행했다. 나는 왜인지 부끄러워서 일본인들처럼 질서를 지키고 싶었고, 줄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러면 안 되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기장과 담판을 지으러 갔던 부랑자들이 돌아왔고, 그들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성공했다고, 오늘 새벽 KAL기로 바꿔줬다고. 대한민국 부랑자들이 거침없이 따져대자 일본인 기장이 그들의 표를 대한항공 직항으로 표를 바꿔준 것이었다. (!!!) 나만 빼고. 왜냐면 나는 가만히 있었으니까.
난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기장한테 뛰어갔다. 눈물이 났다. 그때는 영어도 지지리 못하던 때라 이렇게 말했다. 'why!' 이 why에는 '나는 왜 안 바꿔줘! 다른 한국인은 다 바꿔줬잖아!'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최종적으로 나까지 표를 바꿔주게 되었다. 난 진상 손님이 되기 싫었는데..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꼭 그날 출국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나만 못 간다고 생각하니 서러웠던 것 같다. 한국인들의 요란함과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에 나는 그 중간에서 한국인 부랑자(?)들의 과격함에 조금은 창피함을 느꼈는데, 회사에 와보니 그건 별거도 아니었다. 창피할 것도 없었다. 그냥 그게 한국인이니까. 제 밥그릇 지가 지켜야지.. 우리는 문제를 해결을 하기 위해 요구하고 또 투쟁하는 민족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압구정에 산다던 어떤 언니의 노트북으로 무한도전을 보며 새벽이 되길 기다렸다. 우린 이 역경을 이겨내느라 지치고 힘들었지만 첫 플랫폼에서의 만남보다는 왜인지 조금 연대감이 생긴 것 같았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한국 분들은 블랙프라이데이였던 탓인지 캐리어가 두세 개씩 되었다. 곧 터질 것 같기도 했다. 내 캐리어만 유일하게 작고 보잘것없었다. 나의 첫 여행 캐리어 무난했던 아메리칸 투어리스트. 한적한 새벽 공항에서 난 뭐랄까, 조금의 소속감을 느끼고 무사히, 오히려 편하게 직항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