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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플라스틱이라는 것

넷플릭스 '플라스틱 바다' 다큐멘터리 리뷰

by alerce

플라스틱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이 지구 상에서 불사의 상태로 온 세상을 떠다니는 플라스틱들. 원래 모든 물질과 생명들은 변하기에 아름답고, 끝이 있기에 이 생태계는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한 인생을 온 힘을 다해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우린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후세의 인류는 다시 온 힘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고 세상의 이치라 믿는다. 자연의 순리 가운데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가 말이다. 아무리 오래 사는 거북이도 결국은 껍질만 남긴 채 그의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한 과학자에 의해서 탄생된 이 물질, 플라스틱은.. 그 모든 운명의 고리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물질인 듯하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 때 아침이면 학교에서 환경 관련 비디오를 많이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다. 우리나라는 전기를 아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다. 재활용하고 아끼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결국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을까. 이런 시대를 살아온 나였지만,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환경에 관한 관심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볼 수 있다. 그런 넘쳐나는 정보들을 관망하며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지구가 점점 인류를 버거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버거움을 어떻게 하면 가볍게 해 줄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도 않은 나 혼자서 괜히 고민이 많아진다.


넷플릭스 다큐 '플라스틱 바다'를 보니 불사의 플라스틱은 바다 심해 이곳저곳에 깔려있었다. 동물들이 플라스틱 때문에 다치는 것 또한 마음이 아프지만, 미세 플라스틱이 플랑크톤과 1:2의 비율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더욱 충격이었다.


우리는 무수한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다시 미세 플라스틱을 품은 물과, 생물을 섭취하며 우리 몸속으로 흡수하고 있다. 이 플라스틱은 쓰레기 통에 버렸다는 것 만으로는 죽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그 플라스틱은 우리 몸 안에서 인공 에스트로겐을 뿜는다. 이 환경 호르몬은 여러 질병을 유발한다. 미국의 6세에서 11세까지의 아이들은 그 이전 세대보다 이 BPA라는 수치가 높다고 한다. 이는 불임 및 무정자증을 유발한다. 결국 불사인 플라스틱은 어떻게든 인류를 서서히 멸종시킬 것이다.


왜 각국은, 기업체는 플라스틱 사용을 막지 않는 것일까. 배우신 분들이 이러한 현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하지만 답은 간단하다는 것쯤, 회사 다니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자유경쟁시장의 원리 때문이다. 경쟁하고 승리해야 하기에, 우리는 더 싸고 더 생산하기 쉬운, 불량률이 적은 물건을 계속해서 생산한다. 경쟁사가 500원에 파는 것을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때문에 600원에 팔면 그것은 패배하는 길이라고 모두가 굳게 믿고 있다.


각국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처럼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나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랄까, 무언의 자부심도 있었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분리수거만큼은 선진국이라는 그런 우쭐한 마음. 미국은 모든 것을 한 곳에 넣어 버리고, 음식물도 하수구로 갈아서 버린다. 유럽은 유럽의 각국 나름대로 다르지만, 생각보다 철저하지 않았다. 난 이런 우리나라가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게 웬걸. 우리나라 실제 분리수거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민간인의 분리수거율은 세계 2 위이지만, 그 뒤로 실질적 재생산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업자들이 쓰레기로 장난을 치느라 그렇단다. 분리수거 업체는 분리수거 명목으로 돈을 받고 쓰레기를 매립한다. 다른 나라에 팔아 또 돈을 벌기도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결국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환경을 지키려 했던 작은 노력까지 이렇게 묵살당한다.


왜 모든 환경 문제는 대중에게 떠안기고 기업과 나라, 업자들은 자신의 이익, 승리의 쟁취에만 눈이 멀어있는 것일까. 결국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이 상태로는 누군가가 이긴다 해도 결국에는 진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목을 서서히 조르고 있음을 알면서도 거대한 사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린 계속 이 흐름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난 배달음식을 정말 구역질 나게 싫어한다. 일회용품 사용도 정말 싫다. 하지만 또 필요할 때는 쓰고 만다. 이런 나도 싫다. 이런 글조차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럼에도 나는 배달을 해먹은 작은 플라스틱들을 씻어서 어떻게든 재활용 통에 쑤셔 박아 본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친구들도 남자 친구도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그런 것 좀 신경 그만 써, 어차피 재활용 안되잖아. 몇 명이 노력한다고 해도 다 필요 없어. 어차피 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야'


작은 노력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적어도 난 작은 노력이라도 해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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