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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May 14. 2022

글이 쓰기 싫다가 좋다가 한다.

살면서 가끔은 글을 쓰는 게 싫었다. 쓰고 싶은데 잘 안 써진다고 해야 하나. 최근에도 꽤 오래 그런 증상이 있어서 나는 이게 일종의 마음의 슬럼프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길어지니까 그게 아닌 것 같다.


오랜만에 용기를 내서 글을 쓴다. 왜 글을 쓰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까나. 그 점에 있어서는 정말 나 자신도 굉장히 궁금하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나는 브런치라는 공개된 플랫폼에서 글을 쓰는 걸까? 왜 그토록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쓰는 걸 좋아하고, 그냥 방구석에서 혼자 일기장에 쓰고 보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 공개된 곳에 올리려고 부단히 용기를 내는 걸까? 조용한 관종이란 이런 걸까? 하지만 익명이다 보니 어떤 글이 관심을 받는다고 해도 나 자신은 전혀 유명해지지 않는다. (사실 그래도 관심을 받으면 기분이 좋기는...)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큰 이유는 없다.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정말 무용한 행위이지 않은가?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창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처음 글을 쓸 때는 나름의 이유를 만들었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공감하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봤고, 위로를 얻는다던가 뭔가 큰 삶의 영감을 얻는다던가 하는… 그런 거창한 것들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그것도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지어낸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사실 나는 이유 없이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때 글을 쓰고 싶은가. 단순히 어떤 것을 읽거나 보거나 듣고 내가 어떤 것을 느끼면 갑자기 뭔가를 써 내려가고 싶다는 욕망이 엄청나게 생겨난다. 근데 또 혼자 일기장에 쓰는 건 뭔가 아쉽고 부족하다. 내 생각을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갈망이 아주아주 깊은 내면에 있는 듯하다. 아마도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 내 생각을, 글을 한번 읽어봐 줬으면 하는 욕망이 있어서겠지.


생각해보면 글, 그림, 영화, 시 같은 ‘콘텐츠’란 것은 결국 누군가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듣게 되는 과정이다. 나에겐 그게 일종의 대화의 과정처럼 연쇄적으로 창작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누가 나한테 감동적인 편지를 보내왔는데,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갑자기 혼자 미주알고주알 답장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답장을 그 대상이 볼 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딱히 그 콘텐츠에 관한 내용도 아닌 거 같다. 그러니 또 독후감이란 것과는 다른 종류의 화답이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아님 아예 이유가 없든, 개인의 생각을 공개적인 곳에 솔직하게 발랑 까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나 같은 쫄보 겁쟁이는 어지간한 용기를 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글을 올리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 오히려 더 자유롭게 별별 이야기를 써 놓기도 했다. 익명이라는 가면이 있었기에 가능한 용기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입이 간질간질해서 하나 둘에게 소개하다 보니 절친한 친구들이라면 내 브런치 계정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 음.. 괜히 말한 것 같다.) 가뜩이나 자기 검열을 엄청해대며 글을 쓰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더 어려워져 버렸다.


사실 평소 대화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나의 복잡하고 다소 비관적인(?) 마음속 생각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남자 친구와도, 가족과도, 친한 친구들과도. 평소에는 오히려 나라는 인간의 경중을 따지면 '가볍다든지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던 지'라는 쪽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전반적인 이미지로 보았을 때 말이다. 친한 친구들을 매일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오랜만에 본다고 해도 시답잖은 장난을 치며 깔깔 웃거나, 근황 토크를 하거나, 자잘한 현실적인 이슈들을 정신없이 나누다 보면 짧은 만남은 순식간에 끝나곤 한다. 굳이 오랜만에 찾아온 그런 시간에 갑작스레 나의 진지한 무언가를- 주로 최근 떠올랐던 삶에 대한 고민과 생각, 철학적 의문들, 인생에 대한 회의감, 하지만 또 어떤 솟아나는 희망, 미래에 대한 꿈과 열정, 근데 또 불안하기도 하며, 불신스러운 주변 상황들... 등등을 늘어놓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나도 나름의 눈치가 있다. 뜬금없이 오그라드는 얘기를 꺼내는 게 싫기도 하고… 그런 내 생각들을 꾹꾹 참고 있다가 어디에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속으로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인간인 것이다. 근데 또 생각이 많아서 쓰는 것도 아닐 때가 있다. 할 말도 없는데 꾸역꾸역 뭔가를 쓸 때도 있다. 아. 정말 왜 쓰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오늘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역시나 거창한 이유는 없이, 오래간만에 재밌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 장기하 작가님의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책인데, 읽고 나니까 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 책을 쓰게 된 장기하 작가님도 처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자격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들.. 그러다가 그냥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고 글을 써 내려가셨다고 한다. 오호... 그렇구나. 사실 뭐가 이렇든 저렇든, 이유가 있든 없든 큰 상관이 없는 거구나. 괜한 스스로의 벽 때문에 내 취미생활을 잃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내가 평소의 가벼운 모습과는 달리 좀 이중적으로 진지한 면을 가지고 있고, 좀 있어 보이는 척을 하는 문장을 적는다던지 하는 거를 친구들이, 지인들이 본다 해도 뭐 크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의외로 원래 그런 인간인걸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뭐 나라는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뭔가를 이룩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아서 지식이 많거나 철학적 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논문을 검증해서 레퍼런스를 첨부하는 그런 부류도 아니고, 대단히 철학이나 역사를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 보니 다 고만고만한 어디서 읽은 듯한 생각들을 또다시 전기 낭비하며 나열할 뿐일지도 모른다. 근데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고 장기하 작가님이 글을 써준 덕분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깨달음도 얻고 또 새로운 재밌는 생각들도 많이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시 글도 쓰게 되었고… 흠, 나라는 인간은 글을 쓴다는 것을 두고도 혼자 ‘왜?’라는 질문을 수천번씩 하면서 주저해한다. 글 쓰는 데에만 그런 게 아니고 일하면서도, 어떤 뉴스를 봐도, 인간관계를 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나는 ‘왜?’하는 의문을 너무 자주 가진다. 그래서 좀 내가 날 봐도 피곤하다. 나의 예민함이 극에 달한 퇴사 직전에도, 나는 부단히 무던해지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이 내 건강에도 안 좋다는 거, 커리어에도 안 좋다는 거, 그냥 정말 멘탈이 부서져가는 기분이 든다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난 그러려니가 정말 잘 안 되는 인간이다.


어떤 개그맨이 대부분의 화나는 일에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하면 화가  난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안되었다. 가수 양희은 작가님이  ‘그러라 그래라는 책도 비슷한 취지의 구절이 많았는데, 나는 역시나 ‘그러라 그래하면서 무난히 살기가 어렵다. 좋은  좋은 거고, 화나는  화가 나고, 부당한  부당한 거고…! 근데  미치겠는 것은  부당한 행동이 일어난 사회적 과정에 대한, 서사적인 부분에서는 안쓰러운 마음 같은 것도 따라온다.


이런 나의 복잡한 내면은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피곤하기만 한 쓸모없는 성격이다. 다만 글을 쓸거리는 많아진다. 뭐, 좋은 점이 하나는 생기는 건가… 여하튼 딱히 글을 쓰는 이유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는 글쓰기를 이어 나가볼 생각이다. 이유가 없어도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준 장기하 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두서없는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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