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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May 15. 2022

돈을 많이 벌다가 적게 버는 삶을 살아간다.


이직을 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최근 나는 돈을 잃은 대신에 적당한 마음의 편안함과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일들을 얻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그 결과를 책임지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데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다만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역시 돈이다. 돈이 없는 건 없는 거니까, 아무래도 그러려니… 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각오는 했지만 월급을 아무리 치밀하게 분배해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겪곤 한다. 이런 경험은 스스로 돈을 번 후로는 처음이어서인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한다. 전에는 소비재 같은 것들은 뭐가 되었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몇 달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되도록 안 사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곤 한다. 잔고가 부족하여 어떻게 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생겼다. 물론 할부라는 좋은 문명의 도구가 있지만… 할부도 두어 개가 쌓이고 나니 더 이상은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쓰지 않게 되었다.


사실 실제로 내가 저소득인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대기업을 다니던 시기에 모아놓은 자산이 있고, 개인적인 원칙 때문에 더 빠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있다. 처음 이직할 때 다짐한 것이 있었는데, 연봉이 많이 줄긴 하지만 평소 저축하던 금액의 액수는 줄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출 이자를 갚고 저축까지 하다 보면 월급은 얼마 남지 않는다. 줄어드는 금액만큼 내 생활을 빠듯하게 가져가야겠지만, 그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선택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얼추 가능할 것도 같았기에, 지금 회사로 이직을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실수령이 줄어들고, 보너스가 줄어든다는 것이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 전에는 상상만 해본 것일 뿐 직접적으로 겪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직접 겪어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어렴풋이, 커피를 덜 사 먹고, 배달 음식을 좀 줄이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 메울 수 있는 정도라고는 계산을 해보긴 했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전에는 연봉 몇 백을 올리려고 이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뭐, 이 또한 퇴사를 통해서 하나 배운 점이니 겸허히 받아들인다… 면 좋겠지만 역시 ‘그러려니…’ 하기엔 힘든 부분이다. 퇴사를 안 해봤으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현실을 모르고 살아갔을 현실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좋게 생각해본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들 한다.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보며 나를 알아가 보며 살고 싶었는데 그런 점에서 좋은 경험이다. 겪어보니 어차피 사람은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맞춰서 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요즘의 나는 3년 전에 산 폰을 그대로 쓰고, 사고 싶은 최신 기기도 1년을 고심하는 사이에 다음 버전이 나와버려서 다시 고민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다. 생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쇼핑을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반려견이 지병이 생겨서 계속 동물 병원에 돈을 쓰게 된다. 보험이 없다 보니 꽤나 큰 금액이다. 역시 이런 걸 보면 저축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살다 보면 갑자기 큰돈이 나갈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요즘 나는 알뜰폰이라는 제도를 처음으로 알아보고, 손수 도시락을 싸 보기도 하고,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당근 마켓을 먼저 검토해보며 어떻게든 세어나가는 돈을 줄여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나는 아이패드를 사려면 어떻게 해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 키보드 케이스 다 합쳐서 사려다 보니..)  


음, 또 긍정 회로를 돌려보자. 좋은 점이 또 있다. 도시락을 싸는 스킬을 가지게 된 것은 돈이 없어서 생긴 좋은 점 중 하나다. 도시락은 주로 일요일 늦은 오후나 월요일 오전에 일주일 치 먹을 만큼 싼다. 돈도 아끼고 건강하기도 하고 다이어트도 돼서 일석 삼조다. 처음 이직하고는 샐러드를 주로 만들어서 갔는데,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게 지겨워서 때려치우기로 했다. 요즘은 두부면과 통밀빵에 꽂혀서 도매로 구매해서 냉동했다가 조리해서 먹는다. 양배추와 토마토는 건강하면서도 저장성이 아주 좋은 채소다. 한번 사면 한두어 달은 거뜬하다. 덕분에 냉장고는 토마토와 양배추로, 냉동고는 빵과 두부면으로 가득 찼다. 어찌 보면 살면서 제일 건강하게 챙겨 먹는 요즘이다. 돈이 많았으면 사실 도시락을 싸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식사 방식은 만족스러워서 언젠가 다시 돈을 많이 벌게 되더라도 (더 못 벌게 될 확률도 높지만) 유지하고 싶은 방식이다.


사람은 적당한 고통이 있어야 행복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뭐든 다 가질 수 있으면 가지는 재미가 없어지고 지루해진다. 인간이란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이루어도 항상 그다음 것을 바라게 된다. 인간은 왜 그렇게 설계되었을까.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장점일지도. 그렇다 해도 항상 원하는 것을 취하려고만 하는 삶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임은 틀림없다.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조금 빠듯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지구 환경에도 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뭐 어쨌든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질 수 없다는 불편함 말고도, 전에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인식이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 또한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문제가 된다. 그 인식은 불만의 씨앗이 되어 아주 깊은 내면에서 날 괴롭히기도 한다. 자주 그러는 것은 아닌데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아니… 내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한 것도 아니고 같은 직군으로 이직을 한 건데 왜 내 경력에 연봉을 이렇게밖에 못 받는 거지? 너무한 거 아닌가? 뭐 보여준 게 없을 때는 그렇다고 치자. 지금은 그래도 나름 회사에서 많은 능력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발전이 없는 거 같단 말이지. 많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이 정도밖에 받을 수 없는 거지? 아니 아이패드 하나 내 돈으로 못 사는 거 너무 심각한 거 아닌가? ’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그런 생각들에 빠져있다가 다시 전에 돈을 많이 벌지만 불행하던 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 이미 충분히 겪어봤지 않아? 사실 전에 가지고 싶은 거는 대부분 가지고, 여행도 일 년에 세네 번 갈 정도로 엄청 다녔는데 네가 그만큼 행복했나 돌이켜봐. 마음이 아프니까 몸도 맨날 아프고 얼마나 괴로웠어. 물론 대기업 환경에 잘 맞는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너는 아니었잖아. 업무 역량은 계속해서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청춘은 허송세월 하며 흘러가고, 사는 이유도 없어지고, 목표도 없고… 그러다 보니 더 회사를 나갈 수 없는 굴레에 빠져들고. 그때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 아니잖아. 그렇게 살아가느니 지금 아이패드 못 사는 삶이 더 행복한 게 아닐까.’


, 어쩔  없다. 나는 그다지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지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   가지 생각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꿈과 희망이 가득  사람이기 때문에 연봉이 적어지는  따위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내가 성장을 이끌며 회사도 성장해가고 있으며 나는 지금 충분히 멋지게  적응하며 살고 있다 좋겠지만, 삶은 동화책이 아니다 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불편한 점이 왕왕 생겨나고 있다. 솔직히 꿈을 향해 도전하고 리스크를 가지고 살아가는 , 그렇게 녹록한 삶은 아닌  같다. 결론적으로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말이 맞는 걸까. 네가 지금 불행하다면  불행을 해결한 만큼의 돈이 없는 거라는 . (7 rings라는 노래 가사 -  Whoever said money can't solve your problems. Must not have had enough money to solve 'em) 내가 천억을 가졌다면 보람 있게 일하면서  걱정도  하고 살았겠지. 결국 나중에 스스로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밖에는 답이 없는 건가…  그러다가 말아먹으면 노숙자 되는 건가다소 찌질한 생각들이  속을 지배한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내가 그렇게 1년간 고민하던, [아이패드를 어떻게 하면   있는가] 문제는 사장님이 일을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며 선물로 건네주면서 끝이 나게 되었다. 고맙게도 애플 펜슬까지 같이 줬다. (감사합니다.) 물론 세트로 갖고 싶었던 키보드 케이스까지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케이스는 신제품으로 사려니 역시 비싸다. 애플은  이렇게  비싸게 파는 거야?  당근 마켓을 기웃거린다. 좋은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매일 검색하다 보니 좋은 매물이 싸게 올라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빠르게 채팅을 시도했는데 대답이 없다. .. 누가 채갈까  초조해진다.


이직 전에는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허송세월 하는 삶이었다. 이직 후에는 돈은 적게 번다만, 보람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얻게 되었다. 이다음은 분명 돈을 많이 벌면서 보람 있는 일들을 하며 살 수 있는 삶이기를… 그래도 나는 이직 전의 삶과 이직 후의 삶 중 고르라고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이직 후가 좋다고 말할 인간이다. 평범한 사람이기에 돈이 없이 살아가는 문제도 받아들이기 어렵긴 한데, 내 가치관과 일에 대한 신념을 지키지 못할 때가 더 그러려니 하고 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뭐,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인간은 원래 고생을 사서 하는 건가 보다. 그래도 원하던 아이패드를 가졌으니 불평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한동안 회사와 나의 성장을 위해 되도록 열심히 일을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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