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엔가 개기월식을 보았다. 개기 월식은 2.5년마다 발생한다고 한다. 나름대로 진귀하고 재미있는 경험인데 사진을 찍어 놓은 꼬락서니를 보니 저게 개기월식인가 그냥 카메라에 뭐가 튄 건가 알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없다. 2.5년마다 개기 월식이라니까 다음 개기 월식 때는 좀 더 좋은 카메라로 잘 담아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만 아마도 그냥 핸드폰으로 찍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기능이 더 좋아지기를 바라본다.
저 당시만 해도 나는 꽤나 적응해 버린 새로운 회사 생활, 갑작스러운 대다수 원년 멤버의 퇴사,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회사 대표들의 모습 등등… 대기업을 뛰쳐나와 들어간 작은 회사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져가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찾아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늘 해외 대학원에 가는 것이 막연한 꿈이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손 놓지 않는 것이 나름의 도움이 되었다. 국내 대학원이지만 영어 점수가 필요한 대학원이어서 나름대로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했다. 시험 준비도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바쁘게 보내다 보니 저 사진을 찍을 당시인 11월에는 어느새 대학원 합격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번 연도에 1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조만간 2학기 개강을 맞이할 예정이다. 2.5년마다 개기 월식이라니 딱 대학원 주기가 아닌가. 내가 다음 개기 월식 때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금 더 재밌는 인생을 살고 있기를 꿈꿔본다.
지나고 보면 대기업에서 아무리 힘들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워도 딱 죽기 직전까지 버텼던 것이 도움이 된다. 미련했다고 자책했는데 버티는 것도 살면서 한 번쯤 해봐야 하는 과정 같다. 지독하게 끝을 보고 퇴사하니 어떤 힘든 일을 겪어도 기업을 나온 것에 딱히 미련이 없다.
22년 11월로부터 2.5년이 지나면 25년 3월 언저리이겠다. 또다시 만날 개기월식 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바로 옆 어른들처럼 살아가리라는 예측가능한 미래가 아닌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기대된다.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종종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