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rce Aug 30. 2023

무지개를 연달아 본 여름날



올해 여름은 이상하게도 태풍의 영향인지 소낙비가 자주 내린 여름이었다. 해가 떴을 시간임에도 어둑하고 습도가 높아진 아침을 느끼면서 눈을 뜬다.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비가 오는구나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창 밖을 내다보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럼에도 요즘의 날씨는 다채롭다. 아침에서 점심까지 비가 오다가도 저녁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추고 빽빽하던 구름도 뒤편의 하늘을 빼꼼히 보여준다. 요즘은 퇴근 시간도 꽤나 빨라져서 석양을 보며 퇴근하곤 했는데, 짙은 회색 구름 뒤로 비추는 주홍빛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넋을 놓고 찍곤 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불리기도,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진 석양이 지는 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으로 지구 저 반대편 사람들과 소통하고 컴퓨터로 하루종일 노동하는 현대인인 나에게도 여전히 마법같이 신비로운 시간이다.


그리고 꼭 그 시간에는 주홍 빛이 습기를 품은 공기와 만나서인지 반대편에 무지개가 드리운다. 최근에는 꽤나 연달아서 무지개를 뜬 날들을 만났다. 혹시 복권을 사야 하는 게 아닐까 돼지꿈을 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무지개의 의미를 급하게 찾아보았다. 무지개는 동양에서는 흉조고, 서양에서는 길조였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다시는 대홍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신의 약조이다. 과학적으로는 물방울이 빛을 반사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해석들이었다. 복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연속적인 우연하고 기묘한 아름다움을 감상했던 경험은 충분하게 짜릿했다. 지루한 일상에 행복감을 주기에 이 정도면 유난한 이벤트가 아닌가.



최근 카톡방에서 친구들과 인생은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삶과 재밌지만 불안한 삶 둘에서의 저울질이 아닌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무지개를 만나고 바로 복권을 생각하는 사람 치고는 여전히 나는 철이 덜 들었다.  하고 싶은 일과 재미를 위해 불안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나에게 무지개만큼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잠깐 하늘에 비추었다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걸 본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영감을 준다. 정말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 추위에 대처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