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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Jan 15. 2019

언제부턴가 사과의 말을 아낀다는 것

자기 포장도 능력이겠지..


어릴 때부터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작은 잘못에도 대수롭지 않게 사과하는 말버릇이랄까. 나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실수를 많이 하면서 살았다. 내 몸만 고생하면 다행이지만, 타인에게도 가끔 피해를 끼치곤 했다. 물건을 빌리고 잃어버리거나, 길을 잘못 들거나 하는 작은 실수들.. 그렇게 실수를 하고 나면 그 사람에게 꼭 용서를 구해야 마음이 편했었다. 어린 마음에는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사과를 안 하면 왠지 비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변명하는 것도 웬만해선 안 했다. 어차피 벌어진 미안한 상황에서 굳이 날 변호하면 더 상대의 화를 돋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조금 억울한 구석이 있어도 원인 제공자가 나라면... 남 탓을 안 하려고 되도록 노력했다. 그냥 사과하고 깔끔하게 넘어가는 것이 좋았으니까. 그리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의 분위기 자체가 이런 나를 만들었을까 싶다. 잘못은 하면 물론 혼이 났지만 혼나는 게 무서워서 거짓말로 감추면 더 혼이 나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과하는 말을 아끼게 된다. 대학생 때부터 사과하는 말을 점점 아끼게 되었는데,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은 내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처럼 아주 작은 잘못도 사과를 하고 넘겼다. 그것이 옳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잘못을 하더라도 남 탓을 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더라도 자기변호를 할지언정 절대 사과는 하지 않았다. 마치 사과를 해버리면 진짜 죄인이 되어버린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쉽게 사과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되려 잘못을 덮고 보려는 그런 행동들이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선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가 잘못했는지는 뻔하게 보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나는 어느새 실수투성이 이미지가 되어 있었고, 사과를 하지 않던 사람들은 이미지적으론 완벽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도 분명 실수를 했는데.. 왜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는 걸까? 왜 저 사람은 자기가 잘못 알려주고는 후배한테 화를 크게 내서 덮어 씌우는 걸까? 왜 저 사람은 자기가 성추행을 해놓고 잘못이 없다고 어필하고 다니는 걸까? 오히려 피해자는 자신을 더 웅크리고 소외되고 있는데... 하지만 너무 잘못한 사람이 뻔히 보이잖아? 아무도 당신이 한 행동을 모를 것 같아?..


하지만 나의 예상을 비웃듯 상황은 언제나 사과하지 않은 쪽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한다면..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어떤 사건의 잘잘못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빨리 결론짓고 다수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원하지. 그래서 한 사람 싸잡아서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고 넘어가면 그걸로 그들에겐 끝인 것이다. 그리고 누가 먼저 사과를 하면 판결이 내려진 것처럼 상황은 쉽게 종결돼 버리곤 한다. 자기가 완벽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어떤 실수를 해도 철면피를 깔고 단 한마디의 사과를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데...


치열한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걸까? 나도 점점 사과하는 말을 아끼게 된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실수를 많이 줄이기도 했지만,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 탓을 하는 것, 잘못을 숨기는 것 모두 아직도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변호해줄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제는 나로 인해서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사과하기보다는 차분하게 꼭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자기변호를 해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변명하는 것이라 받아들여져서 듣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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