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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May 15. 2018

개인의 공간이 말해주는 것

방치된 먼지와 쓰레기=방치된 나


사람은 사춘기쯤이 되면 누구나 고유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오빠와 같이 방을 쓰다가 나만의 방을 가졌을 때의 기분은 잊기 힘들다.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자아를 가지게 되는 계기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엄마가 방 청소를 해주시곤 했기 때문에, 온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 방을 혼자서 관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공간이 얼마나 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자취방에 대한 애착과 해방감, 책임감도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자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참 유난스러운 동물이 분명하다. 이토록 사적인 공간을 원하며 살아가는 동물이 있을까.



내 방은 내가 누군가를 초대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내가 잠을 자고, 먹고, 마시는 나와 제일 밀접한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자신의 방을 소셜 미디어에 스스럼없이 공개하곤 하지만, 굳이 그런 방식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나와 닮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룰에서 벗어나서 뭐든지 내 스타일대로 할 수 있는 곳,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워지는 곳이 내 방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은밀한 개인의 치부들이 아무렇지 않아 지는 공간이다. 이런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가져봐야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된다. 진정한 자유 속에서 나는 얼마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는 것이다.


이런 개인의 공간은 신기하게도, 개인의 외적인 취향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의 경우는 내면이 불안정하고 흐트러질 때 똑같이 방의 모습도 흐트러진다. 먼지가 쌓여가고, 각이 흐트러진다. 물건도 아무렇게나 쌓여간다. 하지만 건강한 에너지가 샘솟을 때는 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해진다. 생각보다 공간을 관리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에, 조금만 관리를 안 해도 먼지와 쓰레기가 넘쳐난다. 그래선지 사람의 상태는 곧바로 공간에 반영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청소는 자신을 갈고닦는 일, 방에 쌓여있는 것은 먼지와 더러움이 아니다. 먼지나 더러움을 방치한 과거의 자신이 쌓여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내 방을 둘러본다. 방이 말해준다. 너의 내면은 지금 이런 상태라고.. 최소한의 관리조차 받지 못한 내 방을 볼 때면 지금 나는 최악이구나. 싶다. 지난날의 무의욕이 덕지덕지 쌓여있는 느낌..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나 자신과 다름없는 방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방치했다. 그래도 이렇게 방을 살핀다는 것은 어느 정도 힘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다시 청소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할 것이다. 꼭 이상태로 유지해야지.라고. 내 마음도 내 방처럼 꾸준한 관리와 청소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자꾸 어디서 날아든 먼지가 쌓여 더러워지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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