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rce May 31. 2018

잘 먹어서 미안하다는 것

왜 맛있는거야 왜!


몇년 전만해도 세상에 정보가 이렇게 차고 넘치지 않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너무 많은 정보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모르고 싶어도 여기 저기서 알려주고, 빨리 퍼져나간다. 앞으로는 무지해서 몰랐다. 라는 변명도 안먹힐 것 같다. 돌이켜보면 무지를 방패로 삼으면 마음은 편해지는 것들이 많았는데, 나에게 특히 몰라서 좋았던 것은 동물로 만들어지는 많은 것의 생산과정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몰랐기 때문에 맘편하게 먹고 사용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는 과거에도 관심만 있었다면 tv로 접했던 내용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딱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매일같이 죄책감을 심어주는 정보가 넘쳐난다.


몇일 전에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 수십마리의 닭을 키우는 브라질 닭 공장 기사를 보았다. bettery hen 이라고 하는 이 공장에서 하루종일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브라질 닭을 보며, 인간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걸까.. 무서워진다. 적어도 서있게는 해주지.. 하지만 나는 그 공장 주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걸 이내 깨닫는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고, 사람들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수요에 나도 많이 일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삼계탕은 너무 맛있는걸...


많은 동물이 멸종하는 이 시대에 소나 돼지는 지구 생태계의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사람이 첫째이고 2~4위가 소,돼지,양이란다. 왜냐면 인간이 택한 먹거리기 때문에. 맛있는게 죄인건지.. 이게 과연 정상적인 흐름인걸까? 나도 그 시스템에 일조하고 있는 육식파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역시 세상은 좋아지는 곳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다른 곳이 필요한 걸까.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들은 몇 달에 한번 먹던 고기를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섭취하게 되었다. 이런 먹보 인류를 먹이기 위해 좁고 더러운 우리에서 사육되어야만 하는 동물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걸까?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면 해결되는 문제인걸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웬걸.. 오늘은 다큐에서 더 충격적인 내용을 듣게되었다. 식물이 식물끼리 화학적 작용으로 소통도하고 짝도 찾고, 심지어 기억도 한다는 내용이 다큐의 내용이었다. 다큐 초반, 채식주의자들이 나와 인터뷰를 한다. 그들은 지능(intelligence)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눴을 때, 동물도 감정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고, 여러 기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체품으로 식물만 먹는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런데 식물학자들이 말한다. 식물에게 신경세포나 뇌는 없지만 그들만의 화학적 방식으로 기억하고, 소통한다고.. 위험 요소를 전달해서 알려주기도 하며, 빛이 오는 방향을 기억해두기도 한다고 한다. 식물학자들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식물도 지능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다큐는 과연 식물은 지능이 없는 것인지, 과연 지능의 정의는 무엇인지, 식물을 먹어도 되는건지.. 많은 질문을 남긴다. 식물은 생명이 아닌걸까? 생명의 존엄성에 어떤 범위라는 것이 있는걸까? 그건 누가 정해주는 걸까? 나 역시 질문만 가득해진다. 이와중에 나는 아.. 이제 식물에게도 죄책감을 느끼며 밥을 먹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하지만 죄책감을 언급하는 것이 위선적일 정도로 나는 뭐든지 잘 먹는다.. 나를 포함해서 인류는 너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생명에 대한 존중. 둘 중에서 늘 식욕이 이기고 만다. (난 틀렸어...) 내 생각엔 가축공장으로 인한 전염병.. 같은 심각한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이런 현대인의 생활상이 변할 것 같진 않다. 어쩌면 우리는 동물과 식물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