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재밌겠다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사람. 밤을 새야해도 웃으면서 즐기던 사람. 고생의 끝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던 사람. 그렇다. 분명 어릴 때의 나는 저랬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 정말 바보같이 순수했다. 열정과 노력 하나로 살아왔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행복했다. 머리가 안 좋은 탓인지 어떤 일을 하던지 안 좋은 면까지는 생각도 안해보고 시작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좌충우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일하고 돈도 못받고, 내 능력보다 과한 일을 받아서 하다가 결과물이 안좋아서 욕도 먹고. 부족한 실력으로 여기저기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공모전도 낙방하고.. 그래도 행복했다. 그냥 이 모든게 다 내 밑거름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밑거름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새 대기업 디자이너로 취업해서 굶을 걱정은 없이 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와 밥은 굶지 않을지언정 정신은 썩어가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손바닥 뒤집듯이 시니컬하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회사에서 일을 받으면 ‘해서 뭐해.’ ‘대충해.’ ‘적당히좀 하지.’ ‘어짜피 이득은 회사가 보는거 아닌가?’ ‘에휴 부질없어.’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옆 사람을 보면 어쩐지 바보같고 우습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거지? 어짜피 다 똑같은 월급쟁이에, 내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오바해서 나까지 피곤하게 하는거지? 열심히 할수록 일만 더 준다는거 모르나?
사람이 너무 많이 아는 것이 안 좋을 때가 있다. 한계를 모르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아버리면 그 만큼만 하게 된다. 아니, 시작도 안하게 된다. 너무 무서우니까...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회사는 언제나 나에게 한계를 속삭인다. 너는 여기서 많게는 50대까지 일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바래서는 안되고, 임원이 되고 싶다면 동기부터 선배까지 무슨 수를 써서든 밟고 올라와야 할거야. 회사에 충성하며, 정치도 열심히 하고, 동료에 대한 배려나 신뢰보다는 내가 더 돋보이는 방법을 고민해야해. 그러기 위해선 어떤 비열한 짓도 일삼을 수 있어야 올라갈 수 있어. 하지만 만약 사업이 어려워지면 혹여나 정리해고를 당하더라도 너무 원망하지는 마.
물론 대기업 직장에도 좋은 점, 밝은 점, 희망적인 부분은 있을 것이다. 퇴직할 때까지 남들보다 돈은 많이 모을 수 있겠다.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복지 여건이 좋다.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한다. 고마운 부분임은 분명하지만, 이 회사 안에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과 인간관계, 이 두가지는 없다. 내가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이상, 회사에 진심을 쏟아 일할 수 없고. 이 회사에 진심을 다하며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바보취급하게 되니, 진솔한 관계를 쌓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니컬하게 일을 받았고, 같은 일을 하게된 옆자리 선배의 열정적이고 시끄러운 타자소리가 내 신경을 긁고 있던 중이었다. ‘일정은 아직 넉넉한데 왜 벌써 시작하는걸까?’라는 냉소적인 의문이 피어오른다. 그러다 오늘, 몇 년만에 처음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그런 방식으로 남을 무시하듯 생각하는 내가 우스웠다. 아니 회사에서 일하러 온건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왜 잘못인걸까? 모두 바보여서 저렇게 사는 것은 아닐텐데. 잘못된 것은 병들어버린 나겠지. 문득 궁금해진다. 나보다 연차도 훨씬 많으신 선배님은 이 회사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어디까지 직면하고 계실까. 답답하지 않으신가? 아니면 그저 가족을 위해 한계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으신걸까. 개인적으로 물어볼만한 그럴 사이는 아니기에 혼자만 생각해볼 뿐이었다.
이 태도가 고치고 싶어졌던 걸까. 아니 나같은 사람이 많은지 궁금해진걸까. 어떤 이유였는지 네이버 검색창을 켰다. 정보화 시대의 힘을 빌려 인터넷에 ‘시니컬한 태도 고치는 법’ 등을 찾아봤다. 이렇게 저렇게 키워드를 바꿔봐도 딱히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하.. 아니, 자존감 높이는 법은 엄청 연구하면서 왜 시니컬을 극복하는 법은 연구안하는 걸까. 나만 이런건가하여 동기들에게 물어봤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나처럼 시니컬한 태도로 인해서 그 무엇에도 몰입하지 못하는.. 마음이 병든 사람은 생각보다 무수히 많았다. 그들은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란다. 내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 믿음, 열정 이 모든걸 포기하고 그러려니 하고 살라니. 브라질 닭장 안의 닭과 나의 삶은 뭐가 다른걸까.
나는 한마리의 닭장 안 닭이다. 제발 좀 들여보내달라고 사정해서 들어왔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걸까. 스스로 나갈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닭장을 스스로 나가는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왜냐면 닭장 밖이라고 뭐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카페,공무원 뭐 그들이라고 다 행복한 일만 있진 않겠지. 퇴사에 조차 시니컬해져버린 나. 그 어떤 희망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 차라리 한마리의 닭처럼 멍청해져서 즐거운 꿈을 꾸며 뭐든지 해보고 싶다. 대학생 시절 내가 열심히만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그 때. 계속 알을 낳다보면 닭장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때의 내가 되고 싶다. 자신이 알만 낳다가 한마리의 치킨이 될 운명이라는 걸 상상하는 시니컬한 닭보다는 행복하겠지. 절대로 비꼬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닭은 행복하다는 걸 나는 경험해 봤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열심히 알을 낳던 행복한 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