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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뉴 숲클럽

브릭봇 좋아하세요?

by EASYSAILING

며칠 전 나일 로저스 공연이 너무 좋았던지라

'대도시 파리에 다른 괜춘한 공연들이 있을 수도?' 하며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뮤지션들의 공연 일정을 스캔해 봤다. 그런데 브릭봇(Breakbot)이 바로 이틀 뒤 토요일 볼로뉴 숲의 한 클럽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거다!
일렉트로/하우스 공연은 가본 적이 없어 클럽에서 어떻게 공연을 하는지 궁금했다. 더구나 숲 속 클럽이라니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그런데 공연이 새벽 5시에나 끝나는 게 좀 문제. 아무리 집이 숲에서 가까운 16구라고 해도 대중교통이 끊긴 그 시간, 걸어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오밤중에 숲은 좀 무리인가..' 고민하다 프랑스 한인 커뮤니티에 문의했다.
그런데 달리는 답글들이 죄다
'볼로뉴 숲 장난 아니에요, 거기 완전 창녀촌' 이라던가
'볼로뉴 숲으로 유튜브 함 찾아보셈'


뭐 대도시에 이렇게 큰 규모의 공원(?)이 있으면 어느 구석에서는 약 하고 매춘하는 사람들 좀 있는 게 정상 아닌가. 인터넷에 볼로뉴 숲(Bois de Boulogne)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봤다.
웬 폴리스 라인 사진들이... 하나를 클릭했더니 볼로뉴 숲에서 시체 발견..;;
숲의 크기만큼 스케일이 다른 건가..;;
그래서 실망에 실망을 하고 있는데 반가운 쪽지가 왔다.
"브릭봇 좋아하세요? 저도 혼자 가기는 무서운데 같이 가실래요?"

그리하여 브릭봇을 좋아하는 다른 한국인 둘과 그 문제의 숲 클럽에 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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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작 전 시간 때우기 하는 줄 알았던 DJ가 계속 스테이지에 머물면서 그냥 춤추는 클럽이 되어 버렸다. 역시 대부분의 일렉트로/하우스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함께 간 일행과 즐겁게 유산소 운동을 계속했다.

일행과 잠깐 나와 맥주를 마시며 쉬는데 옆 테이블에 왁자지껄한 이탈리아어가 들린다. 오지에서 한국어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반가움과 말을 섞어야 한다는 압박감. 아니나 다를까 곧 합석하게 된 이들은 프랑스로 이직한 밀라노 출신 두 명과 그중 하나의 여자 친구인 모로코인이었다.

여자 친구 없는 녀석은 파리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동료 외에 친구가 전혀 없다며 프랑스인의 쌀쌀맞음과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토로했다. 고작 몇만 원 저가항공으로 한 시간 반이면 집에 날아갈 수 있는 녀석이 엄살이 심하다. 내심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어학연수한다고 파리까지 와서 이탈리아 친구와 어울릴 수는 없는 일.


이후 몇 시간이나 더 오매불망 언제 나오는 것이여- 하고 (유산소 운동을 계속하며) 기다린 브릭봇은 새벽 2시에야 등장, 바통 터치를 한다.

그런데 공연은커녕 브릭봇도 별다를 거 없는 음악만 DJ 했고, 닝겐 떼거지에 떠밀리며 졸며 춤추다 공유 택시 불러 귀가. 집에 오니 새벽 다섯 시가 다 된 시간이다.

희생에 비해 알맹이가 없는 공연이었지만 나름 파리 나이트라이프의 일면을 경험한 것은 좋았다고 생각하기로...


https://www.facebook.com/lesnuitsdelaclair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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