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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월드컵 우승과 애국가 떼창

수탉들의 합창

by EASYSAILING

2018 월드컵, 프랑스-크로아티아 결승전이 있는 일요일이다.

축구를 안 보는 나는 이 난리통을 피하기 위해 파리 시립 모던아트 미술관에 갔다. 센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에펠탑 부근에 이르자 닝겐들의 수가 급격히 는다. 삼색기 선글라스, 삼색기 모자, 삼색기 가발, 삼색기 망토... 차로까지 침범한 삼색 닝겐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뉴욕 아브뉴(Avenue de New York)는 이들의 퍼레이드 전용로가 된 듯했다. 차체 밖으로 몸을 빼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 ‘프랑스인’들이 참 다양하다. 단연 눈에 띄는 사람들은 흑인들. 근육질 웃통에 삼색기를 휘두르고 괴성을 지르며 지나간다. 이들에게 ‘프랑스인임’이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궁금증이 순간 스쳤다. 선조가 구 식민지 출신이라면 일본에 사는 조선인 후손인 셈일 텐데.


미술관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토카데로 공원에서 이에나 다리, 에펠탑에 이르기까지 인파가 엄청나다.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너비의 광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난리 부르스를 출 수도 있는 것이겠지..

어제 프랑스혁명기념일 기념 불꽃쇼(?)를 구경하러 집을 나섰을 때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파리는 건물들이 낮아 에펠탑은 멀리서도 잘 보인다. 굳이 근처까지 가지 않아도 불꽃쇼를 구경하는 데 문제가 없기에 직선거리로 4km 정도 떨어진 집 근처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어제저녁 에펠탑 불꽃쇼를 본 파리지앵의 수는 과연 몇일까?


시립미술관 관람이 끝난 뒤 근처에서 좀 돌아다니다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어디에도 월드컵 응원에 관심 없는 사람을 위한 공간은 없는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 창밖에서 들리는 함성들로 원치 않는 라이브 중계를 받게 되었다. 16구는 평소에는 조용한 거주 지역이고, 이전의 프랑스 경기 몇 번을 집에서 ‘치렀던’ 지라 소음의 정도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승전이라 사람들의 리액션의 정도는 이전과는 달랐다. 그런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골을 넣을 때마다 사람들이 떼창으로 애국가(la marseillaise)를 불렀다는 것이다.

집 근처의 다수의 공간에서 응원하던 사람들이 합심해 한꺼번에 부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가사 헷갈리지도 않고 완벽하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걸 총 네 번을 들었다. 왠지 이런 건 중국 같은데서나 맞이할 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 믿을 수 없었다.

몽마르트르의 아나키스트 정신이며 다양성의 인정과 개인의 의견을 중시하는 프랑스 문화를 생각하면 이런 애국가의 떼창은 좀 놀랍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매년 국경일에 에펠탑에서 불꽃쇼를 하거나 군인들이 제복을 입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도 국뽕 이벤트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06년 이탈리아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서너 달 뒤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고 그때도 이탈리아가 우승을 하는 현장에 있었다.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표출하는 것에야 차이가 없지만 어느 누구도 떼창으로 애국가를 부른다던가, 누군가의 지휘로 목소리를 맞춰 구호를 일사불란하게 외치는 장면은 없었다. 이탈리아에 사는 십여 년 동안 국가의 두 구절을 넘어가는 가사를 자신 있게 외워 부르는 이탈리아인을 본 적도 없다. 나는 애국가의 가사를(1절이나마) 외우는 게 한국에서 받은 주입교육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던 터.


뭔가 답이 있을 것 같다. 혹시 이건 아닐까?

미국에서 애국심 교육이 유난스러운 이유가 짧은 역사와 다양한 이민자 문화가 섞인 미국의 빈약할 수 있는 정체성 때문이라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었다. 혹시 프랑스는 수많은 이민자들 때문이 아닐까?

‘너와 나는 조상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같은 프랑스인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에, 가슴속 국가로서의 ‘프랑스’를 강조하고, ‘프랑스어’를 ‘통합에의 노력’의 지표로 간주하는 것은?


그래서 프랑스어 못하면 이토록 상대를 안 해주는 건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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