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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르니에

앙코르의 향연

by EASYSAILING

늦은 오후까지 침대에서 비몽사몽 하던 주말. 정신이 들 때마다 시계를 봤다 다시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세시... 네시... 다섯 시... 여섯 시... 일곱... 엥? 일곱 시?? 오늘 저녁 팔레 가르니에 리사이틀이 8신데?!?!??
그제야 떡진 머리를 감고 빛의 속도로 외출 준비를 했다. 지하철에서 구글맵을 보니 딱 8:02에 도착할 것 같았다. 옛날 한 오페라 공연에 간발의 차로 늦어 인터미션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던 기억에 잔뜩 긴장, 지하철 오페라 역에서 내려 팔레 가르니에까지 전력 질주했다.

7:58에 프린트한 표를 팔랑이며 입구에 들어서니 한 눈에도 인격수양 덜 된 직원이,
"원래는 입장 안 시켜주는 건데 봐주는 거야"


자리에 앉자마자 박수가 시작되고 가수가 입장했다. 쌈마이 자리들만 만석인 것으로 보아 다들 나처럼 극장 구경하려고 25유로짜리 공연표 끊고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컸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테너가 부르는 독일 가곡들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오랫동안 편히 앉아서 극장 구경을 하겠노라는 애초의 목적에는 딱 맞는 공연이었다. 특히 천장 프레스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통 이렇게 과하게 장식적인 인테리어에는 바로크 스타일의 그림들이 구색을 맞추고 있게 마련인데 뜻밖의 샤갈이었다. 얼핏 보면 어린애 그림 같은 샤갈의 프레스코와 장식적인 금색 인테리어가 대비를 이루면서 은근히 잘 어울리고 너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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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 동안 눈으로 구석구석 극장 구경을 하고 있으려니 공연이 끝났다. 가수와 연주자가 무대에서 퇴장하는데 박수소리가 영 시원찮았다. 이런 박수에도 앙코르 공연을 할 것인가 의구심이 들던 찰나 뮤지션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악보 없이 준비한 앙코르곡을 부르고는 박수와 함께 무대를 떠났다. 자신 없는 박수는 연명하듯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설마 앙코르 두 번 할까- 그 정도 호응은 아닌데.
그런데.
뮤지션들이 또 나왔다.


이번에도 악보 없이 준비한, 다소 짧은 노래를 불렀다.
이번엔 관중석에서 "브라보(잘한다)!"도 나왔고 아까보다 확실히 큰 박수소리와 함께 퇴장. 내 옆과 뒤에 있던 사람들은 몇몇 다른 관객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나갔다. 관객들은 그러나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이 사람들이 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악보 없이 노래를 한 곡 더 했다.
이번엔 열렬한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대부분 관광객인 관람객들이, 앙코르 몇 번까지 나오는지 보겠노라 작심한 것이 분명했다. 가수와 반주자는 다시 무대에 나왔지만 정중하게 인사만 하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 그래 그렇지, 세 번째 앙코르곡엔 목소리도 좀 힘들어 보이더구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장을 막 나가려는 순간,

아니 이 사람들이..!
가수와 반주자가 다시 무대에 나온다. 출구 직전까지 도착해 곧 나가려던 참이었던 내 옆 사람과 나는 당황해 아무 자리에나 얼른 앉았다. 가수는 이번에도 악보 없이 노래를 한 곡 더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누군가 "브라비씨모(완전짱잘한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가수와 반주자가 퇴장했으나 박수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휘파람 소리도 나오고 공연장은 갑자기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또 나올 것인가- 살짝 궁금했지만
앙코르곡을 계속 듣는 것도 지겨워서 그만 공연장을 나왔다.


오늘 밤,
이 가수와 반주자는 앙코르를 몇 번 하고 끝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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