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밀라노 돌아가는 루트

공연 보러 삼만리

by EASYSAILING

파리에 온 뒤로 그야말로 알찬 공연 라이프를 만끽하는 중이다.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재즈 뮤지션 잭키 테라송(Jacky Terrasson)의 공연 일정을 찾아봤다. 7월 내내 프랑스 전역에서 공연이 있었으나 하나같이 파리에서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기에는 교통편이 어려운 곳들이었다
'주말에 다녀오기 어려우면 아예 밀라노 가는 길에 들러서 가는 것은?'
마침 밀라노 돌아가는 비행기 표는 아직 구매 전이었다. 성수기의 파리-밀라노 구간은 가격이 이미 너무 높기도 했고, 먼 거리지만 기차를 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 한달살이를 끝내고 밀라노에 돌아가야 할 시기인 7월 말-8월 초 공연 일정을 봤더니만 오리악(Auriac)이라는 동네의 재즈 페스티벌이 있었다. 그리고 이 오리악은 파리-밀라노 기차 구간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이런 횡재가!! 방방 뛰었다.
그러나 이 페스티벌의 홈페이지는 2016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었다. 매진되기 전에 빨리 표를 사놓고픈 조바심에 이메일을 보내 봤다.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는 즉시 알려주겠다는 답이 오기에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보니 표가 절찬리 판매 중이다. 깜짝 놀라 급하게 표를 구매하고 그제야 교통편과 숙박을 제대로 알아보려니 이거 내가 생각했던 오리악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다른 오 리 악이었다. 파리에서 밀라노 가는 길 근처에 있기는커녕, 오리악에서 밀라노에 가려면 파리까지 되돌아와 새로 밀라노행 기차를 타야 하는, 정말 외지고 먼 곳이었다.

대략 이런 분위기의 동네인 듯했다.

중간 경유지에서 1박을 하고 가는 일정으로 교통편과 숙박 편도 알아봤으나, 중간에 버스가 주 2회만 다니는 구간이 있어 원하는 날짜에는 도착이 불가능했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오버하는 건가.."
그냥 한 시간 반 걸리는 비행기 타고 집에 가면 간단한 일을 난 왜 이렇게 어렵게 살까. 잠정적으로 공연을 포기했다. 그냥 성능 좋은 이어폰으로 들으면 되는 음악을 뭐 굳이 그 시골구석까지 찾아가겠다고..
그리고 다음날 학원 가는 트람 안에서 성능 좋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인생 뭐 있나, 나는 저기 있는 관객들 사이에서 음악을 듣고 싶고 아름다운 여름 저녁, 가본 적 없는 시골 동네 오리악에서 내가 동경하는 잭키 테라송과 스테판 벨몬도(Stephane Belmondo)와 멋진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집에 오자마자 그 페스티벌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메일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가 알려준 여정으로 검색을 하니 15시간 대신 7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간에 1박을 안 해도 된다. 주 2회 운행하는 버스 구간은 여전히 당일 교통편 없음으로 나왔지만 거리 자체는 가까우니, 가서 히치하이킹을 하든 기어가든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하고 저녁엔 콘서트까지 봐야 하므로 다음날은 그냥 푹 쉬어야지. 호텔을 2박 예약했다. 알고 보니 이 곳이 옛날 학교에서 배운 라스코 동굴벽화가 있는 몽티냑(Montignac)과 가깝다고 한다. 마지막 쉬는 날엔 슬슬 라스코 동굴에나 가서 선사 시대의 향기 나 좀 맡고 동네 어슬렁거리며 보낼 생각이다.
오리악에서 파리로 다시 올라왔다 밀라노에 가려면 너무 길이 머니 그 근처의 다른 공항에서 밀라노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좋겠다. 기차로 서너 시간 거리의 보르도 공항을 알아보니 세상에! 보르도 사람들은 밀라노에 잘 안 가는지, 성수기 8월 초의 보르도-밀라노 구간 저가항공이 단돈 18유로!
그리하여 밀라노 가는 여정은 다음과 같이 짜였다.


1. 일단 콩다-르-라르당(Condat-Le Lardin)이라는 데 까지 기차를 두 번 타고 간 뒤

2. 당일 버스 편이 없다는 몽티냑까지의 구간은 뭔가 방법이 있겠지..

3. 일정이 끝나고 밀라노에 돌아갈 때는 몽티냑에서 보르도 공항까지는 네 시간 반 기차

4. 그리고 보르도에서 밀라노까지는 18유로짜리 비행기!


파리 한달살이를 끝낸 살림살이를 몽조리 싸들고 움직인다는 것이 옛날 배낭여행 생각이 나게 한다. 막상 갔는데 보르도가 너무 좋다던가 하면 그냥 18유로 비행기표 버리고 며칠 더 묵다 돌아갈 수도 있다. 어차피 밀라노에 돌아가서 할.일.도.없.는.데.뭐.
이렇게 급 신날수가...!



keyword
이전 17화오페라 가르니에